김금수(국가공인실천예절 지도사회 전남회장)

 
 

반만년 역사를 가진 우리 문화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 조상님의 영혼이 모셔진 사당에 고(告)하고 작명례를 올렸다.

이 의식은 태어나서 가장 먼저 치른 행사가 되고 15~20세가 되면 성년례를 치렀다. 이어서 인륜대사인 혼인례를 올렸고 장년기를 지나 61세가 되면 회갑연이 열렸다. 회갑연 이후 연회는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생략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일수록 순풍양속의 의식이 많은 편이나 의식행사 모두가 현대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시대에 따라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바꾸거나 폐지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이러한 판단을 사심 없이 잘해야 하는데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수 천년 이어온 순풍양속을 폐지했다면 사회에 큰 손실을 초래해 나라에 누를 끼치고 역사에 더 큰 오점을 남길 것이다. 이달 17일이 제49회 성년의 날이기에 성년 의식에 대하여 몇 마디 하고자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성년례는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가. 이 성년례(관례·계례)는 중국의 설화적 제황인 황제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황제는 동이(한국)에서 자부선인이라는 학자에게 배우고 내황문을 얻어 돌아가 염제신농씨 대신 임금이 되어 백성들에게 생활 방법을 가르쳤다고 전한 것으로 보아 성년례 책무를 일깨우는 관례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일어난 순풍양속이라고 할 것이다.

기록에는 고려 광종 때인 서기 965년 세자 유에게 원복을 입혀 관례를 치렀다고 되어 있다. 조선 초에는 중류 이상 가정에서만 시행해 오다가 이후 보편화되어 15~20세 사이에 남자는 관례, 여자는 계례로 혼인례와 별도로 치러졌고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수천 년 이어온 순풍양속이 끊기었다가 1973년 부활됐다.

1973년과 1974년, 두 해는 매년 4월 20일에, 1975년부터 5월 6일에, 1984년 이후 현재까지는 매년 5월 셋째 주 월요일에 행하고 있는데 옛날처럼 가정에서 단독으로 행하지 않고 학교나 직장에서 집체 성년례 형식으로 행하고 있음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성년 당사자들이 관심 밖에 머문 채 마지못해 응했으나 치른 후 소감은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는 국가공인실천예절지도사회 전남회장으로서 2018년부터 목포대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매년 목포대 1학년(19세) 학생을 대상으로 집체성년례 큰손님(주례)을 맡고 있다. 해가 갈수록 학생들의 의식도 시나브로 달라지고 있음을 감지해 보람도 느끼고 있다. 다만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을 하나 한다면, 학부형이나 가족 친지들이 눈여겨보지 않아 아쉽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성년례 행사를 가장 모범적으로 하고 있다는 유태인의 사례를 소개한다면 남녀가 13세가 되면 반드시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서 부모가 직접 주례를 서고 준비해온 축복문을 히브리어로 읽는다.

더이상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종교인이 된다. 이날 부모와 친지 축하객으로부터 성경책, 손목시계, 축의금 등을 선물로 받는다. 성경책은 성인으로서 인간답게 살라는 뜻이고, 시계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며, 축의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거액이 출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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