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재(전 해남군 기획실장)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화려한 벚꽃이 봄을 알리더니, 4월의 산야(山野)는 화사한 봄꽃과 푸르름으로 수채화를 그린 듯 아름다움을 주고, 조용하던 농촌의 들판 여기저기 농사 준비에 바쁜 모습이다.

아침 일찍 농장엘 가다 보면 밭에서 고구마를 심고, 고추 모종을 하는 모습을 본다. 이제 농촌의 활력이 넘치고 풍년 농사를 위한 준비가 시작된 것 같다. 아침 안개가 자욱한 아름다운 들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좋아 보인다. 고령화로 인해 외국인들이 많은 노동력을 대신하고 있지만, 마을 주변을 지나가다 보면 마늘밭에서 풀을 매고 있는 분들, 고추를 심기 위해 비닐 멀칭을 하고 활대를 꽂고 계시는 마을 어르신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편안하게 사실 수 있는 나이에도 저렇게 힘들게 농사를 짓고 계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존경과 편안함, 그리고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문득 저렇게 열심히 사셨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내 아버지는 북일면 내동리에서 첫 신혼을 시작하셨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그렇겠지만 생활이 어려워 무척이나 힘든 시절이었다. 내 어렸을 적 기억으로 아버지는 바다에서 조그만 배로 김 양식을 하셨고 농사도 지으셨다. 지금이야 김 가공 공장이 있어서 김 가공은 공장에서 하지만 그 시절에는 직접 바다에서 김 양식을 하고 채취한 후 건조·가공까지 직접 했었다. 추운 겨울에 해야 하는 김 양식은 모든 과정이 수작업이어서 정말 힘이 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해남읍으로 이사를 왔다. 논 한 필지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 한 채를 준비해서 이사 오신 것이다. 그때만 해도 농사가 유일한 생계수단이었기 때문에 논 한 필지로는 생활이 어려워 아버지는 농지를 임대해 농사를 지으시고 집에서 소도 키우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하셨다. 그렇지만 생활이 어려우셨는지 5일 시장에서 옷 장사를 시작하셨다. 새벽 4시에 무거운 짐을 버스에 싣고 5일장에 가셔서 장사를 하고 오후 5시경에 귀가하시면 바로 소를 몰고 들에 나가서 일하는 것이 일상이셨다. 집에서 키우는 소로 논·밭갈이를 하면서 농사를 짓고 완도, 진도, 강진 등 5일장을 다니면서 장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 것인지, 그때는 어렸을 때라 알지 못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오신 아버지의 강인함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바로 5남매를 잘 키우기 위해 당신의 몸은 부서지더라도 그렇게 힘들게 열심히 살아오신 것이다. 내가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아버지의 길을 가면서야 그때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 힘든 삶을 사셨던 그 마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 모든 아버지의 모습일 것이다. 이제 퇴직하고 초보 농사꾼으로 농사의 기본을 배우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고추·마늘도 심어보고, 농작물 수확도 해보고, 농사의 어렵고 힘든 일을 몸으로 체험해 가면서 지금도 굽은 허리로 걷기 힘든 나이에 자식들의 만류에도 자식들을 위해 일을 하고 계신다는 어르신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옛날 그 시절 부모님 세대들의 고생하셨던 그 모습들이 새삼스럽게 스쳐 가는 것은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가? 지난 세월 부모님들의 애달팠던 삶을 한 번쯤은 뒤돌아보면 안타깝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나도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라 할 것도 아니지만 열심히 농사짓고 계시는 모든 분들의 간절한 마음을 감히 내가 표현할 수는 없으나, 지금의 어렵고 힘든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진다.

농사철에 접어들었다. 젊은이를 찾아보기 힘든 시골 마을에서 나이 80이 넘으신 분들이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힘들게 농사를 짓고 있다. 쉬시라고 해도 땅을 놀릴 수 없고 도시에 있는 자식들에게 뭐라도 해서 보내기 위해 죽기 전까지 해야 하신단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어버이날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다.

요즈음 코로나19로 많이 힘들기는 하지만 농사철에 접어든 시골의 부모님을 한 번쯤 되돌아보면 좋겠다. 쉬는 날에는 한 번 더 부모님께 가서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 부모님들이 자식을 위해 묵묵히 논밭에서 자기 몸을 희생하며 살아왔던 훌륭한 농부의 마음을 우리 마음 속에 잊지 말고 간직했으면 좋겠다. 이제 새로운 한 해의 영농철이 접어드는 시기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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