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간 이식을 받고 투병 중인 선배가 수술을 잘 마치고 몸이 많이 회복이 됐다며 해남을 오겠단다. 예전 세월호 취재차 진도는 몇 번 가봤지만 해남은 처음이라고 들뜬 목소리다. 해남 이곳저곳도 둘러보고 내년에 나올 책 원고도 마무리하고 싶다고 한다. 선배를 생각하면 수술로 인해 약해진 체력과 코로나 시국에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서울을 떠나 휴식을 위해 천리를 달려올 선배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전기차를 샀는데 너무 좋다고 자랑이다. 우수영까지 가는 길은 신기한 자율주행으로, 도솔암을 오르는데도 힘은 충분했다. 땅끝탑을 걸어가는 선배는 아픈 기색 없이 설렘이 보였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경치에 감탄했고 땅끝 바다를 앞에 두곤 긴 침묵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이제 마흔 넷. 젊은 나이에 힘든 수술을 견디고 새 삶을 찾은 선배는 여유를 찾고 싶어 하는 눈치다. 당장은 가족을 위해 다시 일터로 나가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가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동안 사고 싶었던 장난감 자동차를 산 어린아이 같았다.

닭요리촌을 찾았다. 대학 시절 술잔을 부딪치며 긴 밤을 지새기 좋아했던 선배의 손엔 사이다가 놓여있다. 덩달아 나도 사이다다. 나는 역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술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날씨가 좋은 탓일까, 동그란 보름달이 참 가깝게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보름달을 감상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 잠시 전기차를 충전하는 동안 커피 한 잔을 했다. 선배도 생각의 충전을 마친 것처럼 며칠 사이 자기 얼굴빛이 좋아졌다고 좀 봐달란다. 출발하는 선배에게 해남의 좋은 기운 받아서 건강하실 거라고 안부를 건넸다.

누구나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계기가 몸이 아파서일 수 있고, 사정에 의해 일을 그만둬서 일 때도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때는 너무 늦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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