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 시인)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한 용어인 'NOTA VOTE'는 후보자들 중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지만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을 인정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투표용지에 '찍을 사람 없음' 란을 두어 아무도 지지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투표소를 나오면서 늘 뭔가 아쉽다. 나는 왜 그 후보에게 표를 준 거야? 내가 그 후보를 지지하긴 하나? 꼭 그런 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지지하지도 않는 후보에게 투표를 하고 나온 경험들을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뭔가 영 찜찜하다. 꼭 표를 도둑맞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나온 제도가 'NOTA VOTE'라는 것이다. 이것은 투표용지의 NOTA(None Of The Above/찍을 사람 없음)란에 투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NOTA표도 별도 집계한다. 찍을 사람이 없다고 당당하게 투표할 수 있는 권리야말로 차선이나 차악이 아닌 최선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닐까? 이 제도는 표기된 후보자들 모두를 반대한다는 매우 적극적인 의사 표시로 강력한 정치 행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제도는 이미 인도, 콜롬비아, 그리스, 우크라이나, 스페인, 미국 네바다 주에서 시행 중이며, 러시아에서도 시행된 적이 있다. 또한 백지투표(무효표)를 따로 집계하는 프랑스 같은 나라도 있다.

이 제도는 투표 자체를 기권한다거나 정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기권자나 무용론자들은 민주 주권을 방기하거나 부정하거나 나아가 정치 혐오를 부추길 소지가 있다. 하지만 강한 정치 의사인 '찍을 사람 없음'은 기존 정치인이나 정당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너희가 똑바로 하지 않는다면 너희 전체를 반대하여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겠다'는 시민 주권, 민주주의의 강력한 무기로 작동되는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드는 질문이 있다. '내가 주권을 행사하는 거야, 주권을 강요받는 거야?' 그동안 허다한 선거를 치러 왔지만 내가 주권자로 임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 참 서글프다. 늘 내가 원하는 후보는 존재하지 않는데 투표를 강요받아온 것이다. 그나마의 투표도 행사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 뭔가 죄를 짓고 있다는 강박감이 들게 한다. 지지하지도 않는 차악을 선택하는 게 마치 사회에 선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이들에게 끌려 다닌 것이다. 그것은 내 주권을 왜곡하는 매우 그릇된 행위였다. 그 결과는 이 사회를 부패한 자들에게 갖다 바친 결과로 작동했음을 이제 발설해야 한다. 한국 정치의 부패는 찍을 사람이 없는데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라는 강요에서 비롯되었다고 이제 발설하자. 우리는 투표 후에 늘 실망했다. '그 놈이 그 놈이더라'라는 비극은 한 번도 엇나가지 않았다. 선거 축제는 항상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그 놈이 그 놈'인 정치에게 짓눌려 살았다.

우리는 이제 누구도 지지하지 않으며 당당하게 주권자로서 정치를 바꿔야 한다. '찍을 사람 없음'이라는 한 칸이 그 곳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상상해 보라, '찍을 사람 없음'이 최다 득표를 한다면. 기존 정치세력은 퇴출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시점에서 처절한 자기반성이 시작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선거 뒷담화 대신 당당하게 부패한 정치를 징치하는 주권자인 자신을 보게 되지 않겠는가? 선거제에는 동의하지만 부패 정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주권자의 꾸짖음을 우리도 행사해 보자.

2013년 인도 대법원의 판결 내용을 우리 한국 시민들이 되새겨 볼 시기가 되었다. "이 판결은 투표 시스템 전체에 걸친 변화를 불러올 것이며, 정당들로 하여금 깨끗한 후보를 내보내도록 강제할 것이다. 민주주의란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인데 유권자들은 반대표를 던질 권리도 얻게 될 것이다."

선거제에는 동의하지만 부패한 정치세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NOTA VOTE'를 도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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