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룡(호국여인어란 현창회 회장)

 
 

일본 해남회가 발행한 그의 유고집 「文祿 慶長の役」(임진·정유재란) 에서

어란 사적을 기록한 사와무라 옹의 관직은 조선총독부 순사, 한일합병하 한반도 통치 역사적 과정에서 '순사'는 일본 권력집행의 말단이요, 조선 독립운동 탄압과 감시를 담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와무라 옹은 해남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죽어 해남땅에 뼈를 묻고자한 기본신조로 한반도인의 식산(殖産)에 경주하고 주민들의 생활 향상과 주민과 더불어 실천하고 함께 살아간 인간 사와무라옹의 진실한 면모와 한국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그 사실을 정면으로 엮어 나간 그 자세에 대하여 심심한 경의를 표하노라고, 여러 해남회 회원들은 이 유고집의 독후감에 피력 해 놓았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서기 1898년 5월15일생, 출생지는 일본, 부는 도검연옥원(刀劍硏屋元), 모는 한방의, 그 삼남으로 출생하였다. 일본에서 갑종 잠업학교를 졸업하여 잠업기수.

서기 1920년 10월 조선총독부 순사 배임 동 11월 말일, 명 전라남도 근무, 순천 경찰근무 3년간, 해남군에서 19년간, 제주에서 4년간 도합 26년간의 순사 생활에 한사코 승진을 마다하고 가난한 서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면장직을 최후의 목표로 시골에서만 살았다고 되어있다. 그는 여가의 틈틈에 한학과 한시 그리고 조선어(한글)를 습득하여 조선어는 회화가 능통하게 되었으며 그 후 사서오경을 연구하여 한시에 일가견을 이루어, 일본인 경찰관 1만2000명 중 한시의 일인자가 되었다고 수록 되어있다.

옹은 한학자에 역사 연구가이다. 그가 저술한 「조선누사(累史)」에는 원시시대, 고대 조선, 신라, 고려, 고구려 호(好)대왕 비문, 광개토왕, 고구려, 진한, 마한, 백제, 단군, 부여, 변한, 낙랑과 중국사, 그 외에 삼산면 일인 포로수용소와 '어란'과 칸 마사가개(菅正陰)간첩사건 등 그 밖에 많은 역사를 수록 해 놓았다.

옹은 농업 양잠 수산업 한문 한시 한의학 한글 고고학 그리고 불상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박식하고 기억력 발군한 해남회의 자랑이요 보배였었다.

그는 직업의식을 초월하여 조선 땅과 조선 사람을 사랑했다.

가는 곳마다 그 지역민의 구제에 목숨을 걸고 명예욕이나 보수를 바라지 않고 하나하나 사랑으로 행한 그 마음에 경의를 표하며 그래서 감히 니노미야 손토구(二宮尊德)라 경모하고 싶다라 되어있다.(二宮尊德는 지게를 지고 가면서도 책을 보는 독서가로 전국적으로 존경 받는 인물)

정년 후에는 담양군 구암(九岩)이 있는 면에서 면장이 되어 조선 사람과 더불어 조선땅을 일구며 농사를 같이하여 여생을 보내고 싶다라고 기술 하였다.

사와무라의 장녀 시마구라 이구고(島倉郁子)는 책에서 "나 죽어 이 세상에 다시금 환생(還生)한다면 아버지의 딸로 탄생 하고 싶다" 라고 말하고 있다. 최후 하직은 서기 1988년 3월 1일 향년 89세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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