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기(자유기고가)

 
 

- 중국 역사의 격동기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의 일화이다. 초나라 병사들이 제나라 사람의 도둑을 잡아왔다. 초나라 왕이 안영에게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을 잘 하는가 보오?"라고 비아냥거리며 말하니, 안영이 "강남의 귤나무를 강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열리는데 이는 토양과 기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도 제나라에 있을 때는 선량했는데 초나라에 오니 도둑이 되었네요"라고 말한다. 이에 초나라 왕이 민망해 하며 안영을 융숭하게 대접했다. -

제나라의 뛰어난 재상 안영의 언행을 정리한 책 '안자춘추(晏子春秋)'에 기록된 고사성어 남귤북지의 유래이다.

2018년 5월 암수술로 화순전대병원에 입원했다. 병실에는 위암수술 경과가 안 좋아 장기간 입원해 있는 최광주 씨가 있었다. 그가 치유의 숲에서 씨앗이 떨어져 틔운 여린 소나무 싹을 페트병을 잘라 만든 화분(?)에 옮겨 심어왔다. 싹은 일곱 주였다. 여린 줄기는 나물 보다 가냘팠고, 부드러운 솔잎은 갓난아이 손처럼 앙증맞았다. 광주 씨가 여린 소나무 싹을 정성으로 보살피는 모습을 보니, 오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가 생각났다. 폐렴환자 '존시'와 위암환자 광주 씨의 투병이 비교된 것이다. 존시는 마지막 잎새와 자신의 생명을 연결하는 감상적 절망으로 그저 바라만보면서 죽어갔다. 광주 씨는 정성껏 기르는 소나무 싹과 자신의 생명을 연결하는 감상적 소망으로 암과 싸우고 있었다. 담쟁이 이파리는 존시의 죽음을 앞당기는 절망의 잎새였다. 소나무 싹은 광주 씨의 암을 이기게 하는 소망의 싹이었고, 병실 환우들에게는 치유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퇴원하던 날, 퇴원 못한 광주 씨가 여린 소나무 싹이 심겨진 페트병화분을 선물로 주기에 가지고 왔다. 아파트로 돌아온 나는 소나무 싹들을 발코니에 옮겨 심었다. 아침저녁 살펴보면서 틈틈이 물을 주는 것뿐, 살아있으나 소통할 수 없는 소나무의 가냘픔 앞에서 나는 불안했다. 두 달이 지난 뒤 두 주가 잎의 녹색이 옅어지면서 생기를 잃고 말라갔다. 소나무는 아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겨울이 오기 전 두 주는 결국 죽고 말았다. 허망했다. 광주 씨 얼굴이 떠올랐다.

마산면 친구에게 전화로 자문을 구했다. 공직에 있었던 친구는 난의 기품과 대쪽 같은 강직함을 지녔다. 식물을 사랑하는 친구는 기르고 가꾸는데 수년의 경험이 축적된 노하우가 있다. 난을 바라보는 그윽함은 마치 난과 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2019년 4월 두 주를 화분에 옮겨 담아 마산면 친구 집으로 갔다. 친구에게 병실의 환우 광주 씨의 사연을 들려주면서 소나무를 부탁했다. "친구, 이 소나무가 죽으면 광주 씨도 죽네" 내 과장된 액션의 진정을 친구는 충분히 공감해주었다. 그날 이후 친구 집을 가지 않았다. 궁금하지만 어쩐지 미안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소나무를 보면서 친구에게 보낸 소나무 상태를 마음으로 그려볼 뿐이었다. 집의 소나무는 여전히 부드럽고 여리다. 깊은 가을 어느 날, 친구가 은적사 단풍구경도 구경할 겸 와서 소나무를 보라는 전화를 했다.

2019년 11월 23일 드디어 마산면 친구 집에 갔다. 와! 작은 소나무 두 주는 벌써 우아한 소나무의 기품을 갖추기 시작했다. 바늘잎은 가죽이라도 뚫을 기세로 날을 세웠다. 줄기는 힘차게 굵어져 벌써 용틀임 위용을 보였다. 그 여렸던 소나무를 이렇게 강하게 키워 낸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해남의 풍토이다. 솔잎 깊이 스미는 햇살, 줄기를 어루만지며 스치는 바람, 뿌리를 보듬은 부드러운 흙 그리고 친구의 보살핌으로 이처럼 튼튼하게 자란 것이다. 발코니의 소나무도 봄이 오면 고향 둔주의 집터로 옮겨 심어야겠다.

※ 지난 일년 기고를 허락한 해남신문과 독자 여러분, 그간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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