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밭에서 미처 거두어지지 못해 버려진 들깨가 추운 겨울을 땅속에서 버티고 다음 해에 열매를 맺은 깨, 잘고 단단해서 '돌깨'라 한다.

대부분 농부들은 돌깨를 버린다. 고소한 향기는 많이 안 나지만 깻잎은 풍성하다.

버려진 채 질긴 생명을 이어가 열매를 맺은 깨이다. 돌깨도 거두어져서 여름에 밭에 심어지고 퇴비를 주면 향기 많은 들깨로 자란다.

우리 주변에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데가 있는 모양이다. 세상이 하도 팍팍하니 옛날과는 전혀 다르게 시험 봐서 월급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그런 데도 입에 오르내린다. 거창한 그룹이나 보수가 엄청 높은 공기업 말고도 추가로 그런 곳들이 신의 반열(?)에 오른 모양이다.

부러울지 모르지만 거기 들어가서는 인생이 썩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인생의 한 몫을 거저 얻으려는 영혼 없는 이들이 많을 수도 있어서다. 해고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며 불의와 타협하고 적당히 눈감고 스스로 조용한(?) 괴물이 되어가는 곳. 자기에게 조금만 불편해도 못 참는 수많은 이들을 늘 마주하는 삶을 예약할 수도 있다.

보수도 적고 고생도 많다는 신이 버린 직장, 요즘 젊은이들이 피하려고 하는 곳, 거기에서 오히려 삶의 향기가 진하게 꽃 필 수도 있다. 왜 일부러 고생을 하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 척박한 곳에서 자란 들꽃, 오래 산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선택한 이에겐 자랑스런 직장이다.

스스로 개척하고 적응하는, 당장 가진 현금은 적어도 큰 인생 저축을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부탁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손가락질 받으며, 별 희한한 소리 다 하며 주목받는 소위 '빤스 목사'가 부러운가. 추한 인생으로 살려거든 아첨꾼 직업이 더 낫다. 돌깨를 들깨로 안 보는 농사에서는 버림 받았지만 분명히 돌깨는 들깨다.

스스로 자란 들깨이다. 나도 좀 거두어가서 써달라고 부끄럽지 않게 부탁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2019년을 시작할 때, 황금돼지 해라고 부르신 분들, 저금통이라도 만져 보았는가. 삶이 겸손치 못하면 모든 게 황금으로 보인다. 황금은 거저 굴러 들어오는 재물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옭아매는 탐욕이 될 수도 있다. 앞장서서 돼지를 고기로 보고, 황금으로 본 사람에게 돼지는 말한다.

나는 고기도 황금도 아니고 돼지라고. 가난은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사회가 던져 주는 재앙이 아니라고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황금을 부른다면 꼭 댓가가 따르는 법이다. 자신의 돼지를 잡아서 베푸는 사람이 진짜 황금 돼지를 키운 사람이다.

매사 사람과 일을 돈으로만 본다면 될 일도 안 된다. 황금돼지란 애초부터 없다. 인간이 만든 탐욕 덩어리일 뿐, 그렇게 한 해를 시작했다면, 이제 황금을 돌같이 볼 자신이 있는가. 황금 대신 무엇을 건졌는가. 스스로 노력하여 정직하게 만든 돼지 저금통이라도 만들었다면 박수 받아 마땅하다.

바다 갯벌에서 잡은 바지락을 보면 뻘흙이 조갯살 대신 가득한 갯흙 빈조개가 있다. 이것을 골라 내지 않고 국물을 우리면 갯흙이 국에 고여서 먹기가 곤란해진다. 혹시 겉으로 보기엔 일반 조개와 같은 갯흙 빈조개가 주변에 많다면 깨끗이 씻고 한 해를 보내면 멋질 것이다.

내가 만든 일들 가운데 빈조개는 없었던가. 황금돼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 쉽게 사는 인생보다 돌깨로 살아도 부끄럽지 않게 자신을 가꾸는 삶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다가오는 쥐띠 해, 모두가 겸손하게 함께한다면 쥐구멍에도 그리고 돌깨에도 볕들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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