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과거 잘 통제된 사회, 반대 의견이 허용되지 않았던 독재 시대의 질서가 아름다워 보여도 그것은 병이 깊은 환자나 다름없었다. 통제는 원래 폭력이다. 우리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종종 이런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다. 의식하든 안 하든, 매우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동네방네 펄럭이던 새마을 깃발은 이를 상징한다. 우리는 가난을 벗어던진 상징으로 혹여 간주할지 모르나, 그것은 독재자를 미화하는 홍위병 깃발일 뿐. 그들의 잔치가 끝나자 농촌은 갑자기 버려진 세상이 되어 버렸다. 추억의 완장처럼, 그런 깃발들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농촌이 시들시들해진 것은 1%를 위한 경제계획을 "잘 살아보세"로 꾸며서 공장 노동력 공급소로 전락 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농촌은 그대로인데 새마을 노래를 의식 없이 불러대는 동안 부자가 살지 않는 동네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지붕이 개량됐다고 하지 마라.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농촌 부자의 상징이던 천석꾼은 이제 조그마한 강남 아파트 전세도 못 얻는 신세이다. 그 많던 농촌 인구는 급감했고, 청년들이 살지 않는 노인 요양소같이 전락했다. 학교도 시장도 폐교되거나 폐쇄된 곳이 부지기수다. 농촌은 도시인들에게 그저 며칠간 쉬었다 갈 수 있는 별장 풍경이면 최고이다. 사람 사는 세상으로 동등하게 안 본 지 오래다.

100여년 전이 아니고 20~30여년 전에 부지불식간에 확 바뀌어 버렸다. 농촌은 오래된 과거가 아니고 살아 있는 미래다. 이제 공급할 인력이 없으니 관심을 끌기 어렵다. 금의환향이 사라진 동네, 싫다는 축사와 쓰레기 혹은 분뇨 처리장 그리고 태양광만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이 우리의 미래이다. 농촌이 없으면 세상은 여백이 사라진 살벌한 사출 기계처럼 되고, 여유가 사라진 무한경쟁의 격투기 경기장처럼 되어 버린다.

개발 깃발 없어도 출세 현수막 없어도 우리하기 나름이다. 외지의 도움만 천수답처럼 기다리지 말고 우리 힘으로 가꾸어 갔으면 좋겠다. 비싼 등록금 들여서 자식들 대학 보내려 하지 말고 농촌에 남는 지도자로 키워보면 어떨까. 대학 간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시대는 지났다. 자식 가르칠 정도로 뛰었더니 이미 강남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런 세상에 기어이 합류해서 무엇을 바라는가. 얼마 남지 않은 농촌 청소년들을 농촌의 지도자로 탈바꿈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 농촌에서 할 일은 많다. 억지로 도회지 나가서 고학력 품삯을 찾아보아도 자신에게 맞는 옷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자식을 키워 로또 당첨식으로 도회지로 보내면 무엇이 남는가.

새마을기를 아직도 자랑스럽게 내거는 곳들이 많다. 그 가짜 깃발을 내리고 인간의 깃발을 올려야 한다. 인간이 숨 쉬는, 서로 나누고 사는 공동체 세상의 깃발이 아름답다. 자식들이 타지 나가서 출세했다고 자랑하는 현수막도 이젠 걸지 말았으면 좋겠다. 고향에 돌아오지 않는 자와 우리가 무슨 상관이던가. 자기 과시를 넘어 남아있는 자를 우울하게 만드는 팔불출 행위다. 겸손함이 사라진 동네에 인간이 숨쉬기 힘들다. 동네에 어른이 사라지고 법이 앞서고 재력이 앞선 지 오래다, 출세는 선전할 일이 아니다. 자기 과시는 접고 이웃들과 친구들 덕분이라고 겸손했으면 좋겠다.

농촌에서 일하는 많은 보건소 의사나 학교 교사 등 대부분이 도회지로 가려는 정류장 정도로 농촌에 머물다 간다. 이런 풍경을 바로 잡아야 한다. 사람 차별의 상징인, 완장처럼 휘날리는, 가짜 성공과 도회지 출세의 상징인 새마을기와 출세했다고 자랑질하는 현수막을 내리고 인간의 얼굴을 한 농촌 깃발을 올려야 한다. 농민이 주인인 세상, 농민이 그곳에서 행복한 세상의 깃발을 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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