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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운동 선진지 완도 3도(고금·신지·소안도) 탐방기오길록(해남항일독립운동 추모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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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6  16: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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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항일독립운동추모사업회와 남도의병역사공원해남군유치대표자회의 임원들은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항일운동 성지인 완도 고금도, 신지도, 소안도 등 3島를 탐방했다. 지난 14~15일 1박 2일간 고금도의 1000여 평에 건립된 현충탑과 충무사, 이순신 장군 시신을 83일간 염장으로 방부 처리한 묘소를 참배하고 신지도 현충탑에 헌화했다.

2800여평 규모 추모공원에 건립된 현충탑에 참배하고 역사문화관에 들려 신지면 항일운동 내역에 관한 설명을 듣고 신지도의 항일 운동사 책자를 1권씩 기증 받은 후 독립 운동가들의 비석 광장을 둘러봤다.

특히 집집마다, 공공건물에 태극기가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게양하는 등 15개 마을 1425가구가 함께 게양하고 있었다. 이곳은 바람이 많이 부는 섬이라 태극기가 2~3개월이면 찢어지기 때문에 교체비용은 완도군에서 부담해준다.

소안도는 지금까지 20여분의 건국 훈장 수훈자를 배출해서 전국 면 지역에서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가 배출된 곳이다. 소안도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주민이 투옥되면 남은 주민들은 이불을 덮지 않고 겨울밤을 지내는 등 의리가 깊었다고 한다.

소안도는 1910년대 서당과 야학을 통해 배운 선각자들이 반일 비밀결사 단체인 수위위친계 (守衛爲親契)와 배달청년회 등을 만들어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준하 열사 등은 우리나라의 곡물, 문화재 등을 수탈하기 위하여 왜선의 항로를 안내하는 당사도 등대에 잠입해 일본인 등대수 4명을 살해하는 등 독립투쟁 의지를 불태웠다. 이때 소안도 800명 이상의 주민들이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혀 일제의 통제와 감시를 받으면서도 일본의 국경일을 지키지 않고 일장기를 내걸지 않는 등 저항을 했다고 한다.

소안도와 신지도는 각각 항일 운동사를 완도군 지원을 받아 제작, 완료, 배부 하였으며 기록 보존과 공원조성, 위령탑 건립, 자료전시관 설립 등을 추진해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고취하고 있으나 359명 희생자를 파악한 우리 해남군은 아직까지 어떤 지원이나 발굴의지도 상실한 상황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부모형제와 처자식과 생이별하신 해남출신의 순국열사와 애국지사님들의 나라사랑과 자기희생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해남 충효공원을 건립하여 추모시설을 갖춰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해남항일운동사를 발간하고 심적암에서 유골을 못 찾은 분들의 유골 발굴 사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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