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자칫 자기도 모르게 편집증이 되기도 한다. 자발적이든 어떤 과정에 필요해서든 청년들의 과도한 스펙 쌓기가 이런 증상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잃어버리게 한다. 그래서 잃어버린 자기를 찾아 구만리 길을 헤맬 수도 있다. 그리하여 자기 정체성에 집착하게 되는 병을 얻게 된다. 대학입학 과정에서 그리고 회사들의 입사 과정에서 개인들의 삶에 별 상관도 없는 스펙을 지나치게 많이 요구하는 것은 청년들을 병들게 한다.

많은 스펙을 가진 이들이 이상하리만치 오히려 환경 변화에 약하다. 주어진 틀이나 고정된 환경에서는 자기 능력을 잘 발휘할지 모르지만, 조금만 그 틀이 바뀌고 환경이 열악하면 적응 불능자가 되고 성질만 내는 경우가 흔하다. 자기 가치관과 상관없이 다양한 스펙을 정해진 과정에서 단기간에 편집증적으로 수집한 결과, 개인의 환경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게 된 것이다. 자녀의 능력과 자녀의 꿈과 상관없이 다양한 그러나 어렵고 복잡한 것은 빼고 쉬운 스펙만 쌓게 하면 오히려 마음의 병이 된다. 힘든 일을 마다하는 젊음, 그러나 스펙은 놀라우리만치 많은 젊음, 건강한가요?

스펙이 많다고 남을 잘 배려하는 마음도 클 것이라는 것은 착각이다. 오히려 나만의 세계에 집착하여 조금만 자기와 다르면 배척하고 깎아내리려는 마음이 클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인생은 단 한 곳만 파서 쉽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뿌리처럼 다양한 곳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좀 순진하고 느리게 아이들을 키우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영재로 키우는 것이 아니고 인재로 키우는 교육을 한다면 어떨까. 자연은 애초에 정해진 규범이 없다. 인간에게 규범이란 무엇인가. 출세를 위한 과정인가. 인간 세상에서 도대체 출세란 무엇인가. 한번 멈추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내 자식이 못 되길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잘 되게 잘 키우는 부모는 찾기 힘들다. 짜여진 틀과 규범에 집어넣기 바쁘다. 학교 성적이 인생 성적은 아님을 알면서도 어느새 부모의 욕망이 투영된 자식 교육에 매몰된다. 필요 이상의 스펙 쌓기에 돈을 낭비하고도 안 좋은 결과를 얻는 것, 얼마나 바보스러운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능력으로 성취한 일의 결과가 어찌 됐든 거기에 만족해하는 건강한 아이를 보고 싶지 않은가.

아이들을 그룹으로 만들어 컴퓨터 없이 놀라고 하면 잘 논다. 그런데 혼자 떼어 놓고 놀라고 하면 못 논다. 혼자 하는 컴퓨터 게임에는 능숙할 것이다. 벽지나 험한 곳에서 자원 근무하는 보람이 뿌듯하듯이 돈 없이 일을 만들 때, 주어진 상황이 열악함에도 이를 극복해가면서 일을 해낼 때가 아름다운 것이다. 건강한 사회, 그것은 신체만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의학적인 장수 사회가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정신이 건강한 사회, 이웃과 공존하면서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젊음이 넘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자기 정체성, 인생을 쉽게 살고자 쌓는 스펙에서 단박에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건강하려고 무수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기심을 버린 건강한 사고에서 찾아질 것이다. 인생이 늙어가면서 변하듯이 자기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내가 가는 길에서 여러 가지로 나온다. 자기정체성 혼란, 그것은 쉽게 쌓는 과잉 스펙의 부작용이다.

나는 건강한가. 젊음을 출세로 낭비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출세, 그것은 어찌 보면 부질없는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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