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나는 말하고 싶다 "해남의 또 다른 아픈 역사"
5. 5·18은 감춰진 진실이 아닌 해남의 또다른 자긍이어야 한다
이창섭 기자  |  nonno@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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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0  14: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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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싣는 순서 |

1. 그 날 그 곳의 아픔을 기억하다
2. 멈춰버린 38년 그리고 68년
3. 역사의 현장에 서다 - 5·18현장의 역사와 현재
4. 역사의 현장에 서다 - 파도야 너는 아느냐, 갈매기섬의 한을
5. 나는 말하고 싶다 - 5·18 그 날의 진실을
6. 나는 말하고 싶다 - 68년동안 감춰온 아픔을
7. 진정한 치유의 출발점은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에서부터

   
 

 

   
 

"투항하는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했다"

- 상등리 부상자 김병용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시위 상황을 화원이나 진도쪽 주민들에게 알리고 5월 23일 시위대 10여명과 함께 버스 2대를 나눠 타고 해남으로 오던 중 지금의 남도레미콘 부근 상등리에서 잠복해있던 군인들로부터 집중사격을 받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해 아수라장이 됐고 천둥소리가 나며 귀가 멍멍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한참 사격이 이어지다 중지되더니 군인들이 손들고 나오면 살려준다고 우리쪽에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버스 안에서 손들고 나갈 테니 사격을 하지 말라고 외치고 버스에서 뛰어내렸는데 발포가 이어졌다. 살기 위해 타이어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어서 또다시 투항할테니 총을 쏘지 말라고 외치고 손을 들고 다시 나갔다. 그렇지만 또다시 사격이 이뤄졌다.

폐쪽에 총알이 관통해 피를 흘린 상태로 보리밭을 기다시피해 현장에서 벗어났다. 이후 군인들에 의해 발견돼 일단 군부대 의무대로 옮겨졌다. 군부대 의무대에서 치료를 받을 때 병장 한명이 다가와 중대장이 무조건 사살하라며 사격명령을 해서 사격을 했고 그나마 자신이 조준사격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아 사상자가 덜 났다고 말했다. 또 그 중대장이 직접 조준사격을 해서 사상자가 난 것이라고 얘기했다. 당시 상등리 현장에서 한명이 숨진 것을 목격했고 친구인 정상덕이는 복부에 관통상을 입은 뒤 이후 1년 넘게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후유증으로 숨졌다.

공수부대도 아닌 향토사단에 의해 그것도 손들고 나오는 사람을 조준사격 했다. 이제라도 당시 중대장, 대대장, 사단장 등 지휘체계를 철저히 조사해 진상규명 해야한다.

<영상 보기> http://naver.me/FlhbEBVR

   
 

"우슬재 무차별 총격… 내가 당사자다"

- 5·18나주동지회 서환기 부회장

당시 19살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때로 나주에서도 광주 소식을 전해듣고 시위가 있었다.

해남쪽 동향을 살피기 위해 지인들과 지프차를 타고 23일 새벽 5시~6시 사이에 우슬재쪽을 지나게 됐다. 지프차에는 5~6명 정도가 타고 있었고 뒤에는 나주나 광주에서 온 민간인 등 10여명을 태운 화물차가 뒤따르고 있었다.

당시 군부대가 매복해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우슬재를 지나다 집중사격을 받았다. 총소리가 들리자 내가 타고 있던 지프차의 경우 바로 차를 돌렸으며 도로가 당시 비포장인데다 좁다보니 수로에 빠지게 됐고 다행히 총탄을 피했다. 그렇지만 뒤따르던 화물차는 그대로 지나가다 무차별 집중사격을 받았다.

이제는 죽었구나 할 정도로 천둥소리처럼 총소리가 계속 빗발쳤고 이후 몇 명이 죽고 다친지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화물차에서 1명이 크게 다친 것은 직접 목격했고 당시 총격으로 1명이 숨졌다는 소식은 나중에 알게 됐는데 죽은 사람은 나와 같은 나주 영산포 출신으로 평소 알고 지내던 2년 선배였다.

총격이 멎은 뒤 생존자가 있으면 두 손을 들고 나오라는 군인들의 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들과 해남 군부대로 끌려갔다.

공간이 비좁아 며칠 동안 해남경찰서 유치장과 군부대를 오가며 손이 묶인 채로 잠이 들었다. 군부대 안에는 군인들이 관 2개를 이고 야산으로 가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해남에서 사망자가 더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직접 겪은 우슬재 총격은 해가 서서히 뜨던 무렵이라 확실히 오전 5시에서 6시 사이로 기억하고 있다.

<영상 보기> http://naver.me/FiHy5A7J

   
 

"우슬재 총격은 그날 밤에도 있었다"

- 당시 목격자 전 전남매일 주재기자 송대오 씨

시위대가 나주경찰서장 지프차를 탈취해 해남쪽으로 오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군부대가 매복해 있는 우슬재 현장으로 당시 보안대장과 갔다. 그 날이 22일인지 23일인지 뚜렷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저녁을 먹고 지금의 사자상이 있는 자리로 바로 올라갔기 때문에 밤 9시~10시 무렵으로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경찰과 군부대에서는 군부대와 시위대의 충돌을 막기 위해 나에게 중재역할을 맡겼고 나는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당시 알고 지내던 A 씨에게 지금의 옥천파출소 자리에서 이른바 망을 보게 한 뒤 시위대 차량인지 아니면 그냥 일반차량인지 살펴서 무전기로 보안대장에게 알리도록 했다.

A 씨는 시민군으로 보이는 지프차와 버스가 옥천지서 쪽을 지나자 큰 충돌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이상이 없으니 그냥 가도록 하라고 무전을 보냈다. 그렇지만 지금의 사자상 옆 수풀에 매복해 있던 15~20명 정도의 방위병들이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총을 발사했고 집중사격이 이뤄졌다. 사격이 있은 뒤 현장에서 3명이 머리 등에 총을 맞고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육안으로 봐도 죽은 사람으로 보였다.

당시 정규병들이 목포 연대로 다 빠져나가고 훈련이 안 된 방위병들이 동원된 상태라 아마도 시위대로 보이는 차량이 들이닥치자 무서워서 실수로 누군가 총을 발사해 집중사격이 일어난 것으로 추측된다.

우슬재 총격이 23일 오전 6시쯤에 일어났다고 알려지고 있는데 내가 기억하는 상황은 분명히 밤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다른 총격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상 보기> http://naver.me/GSZj0tp7

   
 

"그 날의 진실… 이제는 밝혀야 한다"

- 5·18민중항쟁 해남동지회 김병일 회장

시체를 수습했던 당시 황산면 복지계장 B 씨에 따르면 시체수습 지시가 떨어져 우슬재에서 3구, 상등리에서 1구 등 모두 4구를 수습했고 옷에 피가 많이 묻어있어 군부대에서 지급해준 군복으로 갈아입힌 뒤 나중에 군부대 뒤에 암매장 했다는 말을 들었다.

또 군부대에 서너개의 무덤이 더 있었다고 말해 최소한 4명에서 많게는 7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우슬재 1명, 상등리 1명 등 모두 2명만을 사망자로 인정해 주고 있는데 7명이 숨졌고 암매장이 있었다는 증언은 묵살당한 채 여전히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증언자와 목격자들은 아무리 얘기를 해도 달라지거나 밝혀지는 것이 없이 오히려 자기들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처럼 여겨져 이제는 더 이상 증언을 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당시 목격자들과 함께 이같은 상황을 알리기 위해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서려 했지만 5·18당시 31사단장인 정웅 씨가 평민당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에 평민당 쪽에서 증언을 막아버렸다. 또 5·18당시 해남 대대장이었던 장윤태 씨는 이후 평민당 소속으로 광주 북구의회 의장까지 지냈다.
당시 사단장과 대대장은 해남에서 2명만 숨졌고 발포명령도 하지 않았지만 방위병들이 실수에 의해 사격이 이뤄진 것이며 암매장도 사실무근이다고 밝히고 있지만 7명이 숨졌고 암매장을 목격했으며 조준사격 당했다는 당사자도 있다.

지금이라도 해남 5·18과 관련한 진실규명과 재조사는 물론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영상 보기> http://naver.me/xAPz0dOV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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