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변호사)

 
 

1983년,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면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허리에 탈이 났다. 한동안 꼼짝 못하고 누워 살았다. 좌절했다. 중학교 때부터 줄곧 써왔던 일기장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를 견디기 어려웠다. 자학이었을 게다. 일기장 한 장을 읽고, 그 장을 찢어내어 쫙쫙 찢어버리거나 불을 태웠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일기에 눈길이 멎었다.

'정치를 하는 길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시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되어 활동하다 정치를 하는 길, 둘째는 의사가 되어 고향에서 봉사를 하다 정치를 하는 길, 셋째는 육군사관학교를 가서 군인으로 복무하다 정치에 뛰어드는 길…' 소름이 끼쳤다.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하고 얼마 뒤, 대구 출신 새누리당 의원이 농담을 걸어왔다. "정치인과 조직폭력배는 절대로 스스로 그만두는 법이 없다던데. 정치인은 선거에 떨어져야만 그만두는 거고, 조폭은 칼을 맞았을 때 그만두는데 도대체 최 의원은 어떤 사람이오?"

사실 단순했다. 기자들에게 조선 전기 사대부(士大夫) 논리를 반복했다. "세상이 나하고 맞으면 공직에 종사하는 것이고, 세상이 나하고 맞지 않으면 낙향해서 책을 읽는 법이라오" 선출직 공직자로서 더 이상 세상에 기여할 바를 찾을 수 없다면, 공복(公僕)으로서 시민의 부름에 답할 수 없다면, 어땠어야 했을까. 지금 이 순간 한 줌의 후회도 없다.

2500여년 전 중국 춘추시대. 숙손표와 범선자가 '죽어서도 오래 남는 것(不朽·불후)은 무엇인가'를 놓고 논쟁했다. 범선자는 "대를 이어 현달(顯達)하고 제사가 끊이지 않은 게 '불후'"라고 말했다.

숙손표가 반격했다. "대를 이어 벼슬한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그것을 '불후'라고 할 수 없다. 덕을 쌓는 '입덕(立德)', 공을 세우는 '입공(立功)', 문장을 남기는 '입언(立言)' 이 세 가지야말로 불후다"

그래서 '삼불후(三不朽)'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지방정치는 과연 어떤 '불후'를 꿈꾸고 있을까.

전통적인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공직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의 방편이자 목표였다.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드높여 부모를 드러내는 것', 이것이 입신양명이었다. 그런데 이 입신양명의 가치관은 지금도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한다. 과거 왕조시대의 '입신'은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에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부모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도 이런 세계관은 유효할까. 여전히 선출직이건, 임명직이건 공직자로 나아가는 것만이 효의 길이요, 입신양명의 외길일까. 더 이상 입신양명이 공직의 비전일 수는 없다. 하늘에서 황제로, 왕으로, 공경대부(公卿大夫)로, 사농공상으로 이어지는 중국 '천하사상'의 수직적이고, 획일적인 가치체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스 베버(Max Weber)는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이야기했다. 소명은 직업보다 드높은 가치다. '생계'로서의 정치가 아니고, '입신'으로서의 정치는 더더욱 아니다. '명예'로서의 정치도 아니다. '대접'으로서의 정치는 차라리 망발이다.

그래서 여전히 정치를 꿈꾼다. 누군가는 소명으로, 누군가는 생업으로. 이렇듯 누구나 정치를 꿈꾸지만, 그렇다고 불후의 정치가로 기억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정치라는 영역을 삭제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면 누가 정치를 해야 하는가. 과연, 소명의 정치인은 누구일까.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해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확신을 가진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