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변호사)

 
 

3분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시계를 보지 않고 마음속으로 추정해보자. 어느 정도 정확하게 맞출 수 있을까? 미국의 신경학자 맹건(Mangan)은 피실험자들을 세 집단 (19~24세, 45~50세, 60~70세)으로 나눈 다음 3분의 길이를 추정해보라고 했다.

가장 어린 집단은 3분 46초를 3분으로 추정했다. 중년 집단의 오차는 63초, 노인 집단의 오차는 무려 106초였다. 노인들은 4분 46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3분이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느리게 가는 시계와 유사하다. 대신 세상은 여전히 제 속도로 정확하게 흘러간다. 그저 노인의 생리적 시계가 느려지고 있을 뿐이다. 천천히 굴러가고 있는 자동차에 타고 있을 때, 옆에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의 속도는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새마을호 열차에 탑승하고 있을 때, 반대편을 스쳐 가는 고속열차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우리 몸속에서는 수십 가지의 생리적 시계들이 똑딱거리고 있다. 호흡·혈압·맥박·세포 분열·수면·신진대사 등…. 이들은 모두 고유한 주기를 갖고 있으며, 우리 삶에 리듬과 박자를 부여해준다.

나이 든다는 것은 이런 생리적 주기가 느려지는 것이다. 생리적 시계가 더디 간다는 의미다. 이러한 노인들의 생리적 시계 때문에 노인을 둘러싼 세상의 속도는 훨씬 빨라 보인다. 벌써 2018년의 한 달이 지나간다. 지난해 설이 불과 엊그제 같은데, 얼마 뒤면 또 설이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또 새해가 오고 노인들의 나이테는 한 줄 더 얹어진다. 수천 명의 죽음을 지켜본 말기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본의 완화의료 전문의 오츠 슈이치가 '일본 사람들은 죽을 때 무엇을 가장 후회하는가'를 조사했다. 인간은 후회를 먹고 사는 생물이기에 환자들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회한을 품는다.

인간은 누구나 후회한다. 그러나 후회의 정도에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다. 일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후회는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이였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지난해 겨울 한 장의 유서가 이 땅의 사람들을 울렸다. 광주에 사는 한 78세의 어머니가 아들 셋, 딸 하나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였다. 말기암 치료를 멈추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기 전 자식들 몰래 또박또박 쓴 15줄짜리 유서였다.

"자네들이 나를 돌보아줌이 고마웠네//자네들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젖 물려 배부르면 나를 바라본 눈길에 참 행복했다네…/지아비 잃어 세상 무너져,/험한 세상 속을 버틸 수 있게 해줌도 자네들이었네//…//딸아이야 맏며느리, 맏딸 노릇 버거웠지?/큰 애야… 맏이노릇 하느라 힘들었지?/둘째야… 일찍 어미곁 떠나 홀로 서느라 힘들었지?/막내야… 어미젖이 시원치 않음에도 공부하느라 힘들었지??//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2017년 12월 엄마가)"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어머니는 행복했을 것이다. 고맙다는 말을 가슴으로 받아든 자녀들은 슬픔 속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 한 번 절절하게 느꼈을 것이다.

죽음을 겪어본 이는 없다.

그래서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범답안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죽는다. 그렇다면 예측 가능한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할 수도 있다.

노인 인구 비율이 30%를 넘어가는 해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종교단체나, 사회복지시설이나, 봉사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

꾸불꾸불한 글씨면 어떠랴.

문법 좀 틀리면 어떠랴.

그래서 땅끝 해남에서 짓고 살다간 여러 인연들이 아름다웠노라고 짧은 글이라도 적어 남기는 한 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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