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날과 경로의 달을 맞아 해남군내 각 읍면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읍면사무소 직원과 각 지역 단체가 열심히 준비한 덕에 많은 어르신들이 함께 바깥 공기도 쐬고 이야기를 나눈다. 준비 과정에 다소 손은 가지만 어르신들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보람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르신들을 모시기 위한 행사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의전'이다. 의전은 국가 간 공식 의례에서 통용되는 예법을 말하는데, 일반적인 행사에서는 고위급 인사에 대한 예의를 가리키며 내빈소개와 축사 등이 포함된다.

초청인사가 행사장에서 지역민들에게 인사 한 번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사 한 번 하는 사람이 여러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내빈 소개와 인사, 거기에 축사까지 더해 30~40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면? 지역민들의 피로도는 급격히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취재를 나가 행사장 뒤편에 서있다 보면 "징하게 길다"는 불만을 여러 차례 듣는다.

해남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불만이 쇄도하다 보니 일부 지역은 '의전 간소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정선군은 초청인사 위주의 의전과 진행을 탈피해 행사 시간을 단축하고 약식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동해시는 '권위는 낮게, 품격은 높게'라는 슬로건으로 의전 간소화를 유도하고 있다.

또한 이낙연 총리도 지난 5월 국무총리 취임식에서 의전과 경호의 담장을 거의 없애고 국민과 소통하는 가장 낮은 총리가 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의전 간소화'의 흐름을 표방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의전의 중심은 초청인사와 고위 간부 등으로 이루어진 내빈이 아니라 행사의 참석자, 국민으로 옮겨야 한다. 사실상 지자체가 준비한 행사들은 군민들의 혈세로 마련됐는데, 지역민보다 특정인을 우선시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역민을 위한 행사에서 기념식이 길어지면 영 보기 싫은 모양새가 된다. 뒷자리에 앉은 주민들일수록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특히 어르신들을 모시고 진행하는 행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고령으로 인한 신체의 노화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데 몇 십분씩 꼼짝없이 앉아 있도록 하는 것이 예의있는 일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일부 내빈들에게만 예의를 차리는 것은 주객전도이다. 그러니 의전을 아예 없애진 못해도 간소화는 시도해야 한다. 더군다나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정치인들이 각종 행사에 방문할 것은 뻔히 예상되는 일이다.

행사 주최 측이 관행과 체면치레의 이유로 의전을 할 수밖에 없다면, 의전을 받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간소화 하자고 주장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장황한 소개와 축사로 행사의 의미를 퇴색시키기 전에, 의전 간소화 시도로 '청렴한 해남' 이미지를 위한 발걸음을 내디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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