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웅(해남군장애인종합복지관장)

 
 

'이효리'라는 가수는 참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다. 십 수년 전 그가 아이돌 걸그룹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도, 시대의 섹시 아이콘으로 활동하던 시기에도 특별히 시선이 가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말과 행동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최근에 '효리네 민박'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의 모습은 그동안 드문드문 들려오던 그에 대한 단편적인 인상들이 긴 호흡으로 천천히 드러나면서, 매력적인 사람으로 구체화 되었다. 예능 프로그램이라서 기획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며, 꾸밈이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 은연중에 드러나는 그의 말과 행동에서 그가 '자기 자신'과 '삶'을 대하는 관점이 참 좋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겸손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것에도 인색하지 않다. 삶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오늘을 살 줄 안다.

어중간하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빛나는 총기와 넘치는 에너지로 내가 가진 한계와 약점들이 드러나지 않아 잘 모르고 있다가, 어느 시점에서 총기도 흐려지고 에너지도 줄어들면서 썰물에 바닥이 드러나듯이 드러나는 한계와 약점들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사회적 지위와 관계들 속에서 세팅되어 있는 나를 유지하기 위해 그러한 약점들은 정말 숨기고 싶은 영역이다. 스스로도 외면하고 싶고, 더욱이 남에게는 내 보이고 싶지 않다보니, 아닌 척 없는 척 하면서 살고 싶어진다. 그런데 있는 게 보이지 않을 리 없으니, 아집과 합리화로 방어막을 두껍게 쌓아 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과거 잘 나가던 시절에 천착하면서 과거를 살기 시작한다. 꼰대의 시작이다. 쇼윈도우 부부만 있는게 아니라, 쇼윈도우 인생도 있는 것이다.

이효리는 탑 클래스의 인기인으로 항상 주목받아왔던 것 만큼,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순간에 대한 저항이 있을 법 하다. 그런데, 그러한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그는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 보인다. 자기 자신을 좋아하고, 자기의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려움과 약점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고, 두려움이 없는 것처럼 남에게 포장하지 않으니, 실수하고 상처받고 배워가는 것에서도 거리낌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과거에 자기를 소비하지 않고, 하루하루 오늘을 살아갈 것 같다. 이 젊은 여성이 자기 시간을 살아가는 태도가 참 부럽다.

100세 인생이라 하니,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은 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았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대견스러운 것은 대견스러운 대로 하나씩 떼어 내려놓고 보니, 참 나도 괜찮아 보인다. 사물이나 현상이 어떻게 약점일 수만 있고, 강점일 수만 있겠나.

주름진 거울 속의 얼굴을 들여다보아도, 20대의 팽팽함은 없지만 지금 내 나이의 후덕함이 보이고, 노안 때문에 가까운 것은 잘 못보지만, 먼 곳을 보다보니 전체적인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는 것도 새롭게 보인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두려움과 약한 점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게 익숙하지 않아 하나 하나 열거할 수는 없으나,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사랑스러운 면들이 그래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은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래된 시쳇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앞으로 어느 정도의 삶을 이어가든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하고 연민하고 실수하고 배우기를 어색해 하지 않으면서 '내 나이'로 살기보다 '나'로서 '오늘'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효리'라는 한 젊은 여성을 통해 나 또한 배워가고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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