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민·사회단체 18일 뜻 기려
묘소있는 광주에서는 13일에

 
 

'나하고 상관없는 사람들 같지만, 상관없는 사람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이 연대이다. 민중의 세상 만들자, 혁명의 축제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노동자와 농민, 민중을 위해 평생을 바쳐오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정광훈 의장이 평소 즐겨 한 말이다.

우리 곁을 떠난 지 6년이 된 지금 그를 기리는 추모문화제가 해남에서 열렸다. 해남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민중의벗 정광훈의장 해남추모행사위원회는 지난 18일 저녁 생협 2층에서 6주기 추모제를 열고 고인의 뜻을 기렸다.

이 날 추모제는 추모사와 추모공연, 추모 영상 순으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5·18민중항쟁 기념식에서 올해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는 등 고인이 바라던 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며 "평생을 민중과 함께 검소하게 사신 고인과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또 "고인의 말처럼 촛불로 정권교체를 이뤄내는 등 혁명의 축제와 함께 민중의 세상이 다가옴을 느낀다"며 "고인의 뜻을 받들어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이루고 나아가 자주, 통일을 이룩하는 데 모두가 함께 하자"고 입을 모았다.

광주에서는 기일인 지난 13일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서 전국 각지에서 200여명의 추모객들이 함께 한 가운데 6주기 추모제가 거행됐다.

1939년 9월 13일 옥천면 송운리에서 태어난 정 의장은 1972년 해남 YMCA 농어촌 위원장과 1978년 전남 기독교 농민회를 창립하며 농민운동을 조직화했고 1990년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초대의장을 맡았다.

이후 농민대회를 주도하고 한미 FTA 반대 운동을 벌인 혐의로 여러차례 투옥생활을 했다. 1984년 미국농산물 수입 저지 미국대사관 점거 투쟁과 2002년 멕시코 칸쿤 WTO 각료회의 저지투쟁, 토지없는 농민운동 회의 참가 등 한국의 농업을 지키기 위해 세계를 다녔고 2006년에는 한미 FTA 저지를 위해 정부협상단이 있는 미국 시애틀에서 삼보일배를 하기도 했다.

정 의장은 지난 2011년 4월 화순군수 보궐선거 지원유세 후 해남으로 이동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72세의 나이로 운명했다.

고 정광훈 의장이 작사한 아스팔트 농사라는 노래가 오늘도 귀에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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