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자(보길도비파원 원장)

 
 

다시 12월이 되었다. 시간의 흐름이란 누구에게나 똑같은 속도가 아니라더니 확실히 맞는 말이다. 벌써 12월이라니. 망연자실은 이런 때를 두고 쓰는 것 같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맞은 한해였지만 어느 해의 12월보다 한해를 보내는 심정이 불안하고 고통스럽다. 좋은 정치, 좋은 나라란 국민들이 '정치라는 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편안해야'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어쩐 일인지 어느 한해 정치의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우리 부모세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 역시 비록 전쟁을 직접 몸으로 겪지는 않았지만 부족한 물자를 내핍으로 버티고 장기 군사독재도 겪으며 진짜 삶다운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체험하지도 못하고 살았다. 아니 한때 반짝 좋았던 시절이 없지는 않았다. 여전히 삶은 힘들었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움텄고 자유의 바람도 불었다. 요즘에 와서 되돌아보면 그래도 우리세대는 그나마 조금 더 나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때는 '희망'이란 단어가 있지 않았던가.

요즘 청년층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하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20년을 모아야한다고 한다. 그나마도 정상적으로 직업을 가졌을 때의 일이다. 직업을 갖지 못하고 실업자 군에 들어서는 순간 결혼이나 출산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OECD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은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올 여름엔 '헬조선'이란 유행어까지 나왔다. 3포, 5포에 이어 7포에 이른 젊은이들의 입에서 드디어 지옥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희망이 사라져버린 시대, 잃어버린 시간이다.

온 나라가 부동산투기, 재테크 붐에 미처 돌아갈 때도 이 대열에 끼지 않은 보통의 국민들이 있었다. 집이 주거의 개념을 벗어나 소유나 재테크의 수단이 되는 것을 경계한 대다수의 사람들, 탐욕과 물질위주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무능력자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중산층에도 끼지 못하고 흑수저도 물려줄 수 없는 빈곤층에 몰린 그들 앞에 정유라의 한마디는 비수로 꽂힌다.

"돈도 실력이야. 너네 부모를 원망해"

한국 사회에서 부와 계급은 세습임이 당연시되고 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이건 정상적인 나라의 시스템이 아니다. 국민 복지를 최우선하겠다고 공약한 박근혜대통령은 자신이 "사익을 취하지 않았다"고 변명하기 전에 파탄에 이른 국정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했어야 했다. 청와대 앞에 매주 토요일 밤 모이는 100만인 촛불집회는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불신과 분노의 폭발이며 최고통치자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정부는 세월호문제와 박-최게이트 등 국정농락에 대해 무책임 무감각으로 일관한 것을 반성은커녕 여전히 지금도 거짓과 오만, 사기로 버티기를 한다. 자신들의 거짓과 부패를 덮고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이 와중에 논란거리가 될게 분명한 국정교과서를 공개하는가하면, 개헌논의로 불길이 옮겨가길 바라는 눈치다. 국민을 바보로 여기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며 꼼수임이 분명하다.

세월이 세월인지라 다시 TV앞에 쪼그리고 앉아 매일 밤 신경을 곤두세운다. 또다시 정치인들과 학자들의 식상한 말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잘못하면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을 갖고 왈가왈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다. 새누리당, 부패재벌, 정치검찰, 보수언론의 견고한 정치카르텔은 여전히 견고하다. '우리 사회를 장악했던 부패와 탐욕의 고리를 끊는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박근혜 퇴진 운동'과 함께 역사를 새로 쓰는 가치관의 혁명이 필요하다. 잃어버린 역사의 시간을 정상적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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