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영국의 저명한 문학상인 맨부커 상을 수상한 한국소설 '채식주의자'가 서점가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덕분에 오랜만에 '베스트'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가장 많은 팔리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석달 전 동료 독서클럽 교수들과 함께 '채식주의자'를 읽고 토론했다. 그런데 '채식주의자'를 읽고 모인 교수들 모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었다. 독서클럽에서 여태껏 읽은 책 중 가장 난해한 책 중 하나라는 평가였다. 필자가 무슨 의도로 소설을 썼는지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독서클럽 토론은 보통 책 한권을 마치 동물을 해체하거나 기계를 분해하는 작업과 비슷했다. 책 안에 든 내용물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것들이 거기 왜 들어있는지, 어떤 기능을 하는지 등을 이해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런 작업에 교수들은 아주 능숙했다. 그런데 '채식주의자'는 그러한 분해작업도 재조립 작업도 쉽지 않았다.

'채식주의자'는 주인공 영혜와 연결된 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연작 소설이다. 육식을 거부하는 아내를 둔 남편, 그런 처제로부터 강렬한 성욕을 느끼는 형부, 그런 동생을 돌봐주고 이해하려는 언니의 이야기들로 구성된 소설이다. 주연과 조연, 주인공과 엑스트라로 구성된 위계적 서술방식 대신, 하나의 주인공에 연결된 3명의 주인공을 병렬적으로 엮음으로써, 보다 다양한 삶의 단면을 들여다보게 해준다.

'채식주의자'는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이지만 전통적인 가족 이야기는 아니다. 사랑도, 진실도, 행복도 발견되지 않는다. 모두 피곤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선택했는지, 그들의 가족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지만 이해와 사랑보다는 오해와 갈등으로 고통을 주는 존재들이다. '채식주의자'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조차 평화롭고 순수하게 살 수 없는 이 시대 한국인들의 우울한 자화상을 그려주고 있다.

요즘 서점가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들은 힘든 세상을 쉽게 살아가는 요령을 가르쳐주는 얄팍한 지침서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책에 익숙한 사람들이 '채식주의자'를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진다. 너도 나도 맛집을 찾아 헤매고, TV화면에는 풍성한 요리와 음식 끊임없이 등장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온 국민의 인생 목표가 된 한국사회이다. 그런 시대에 육식을 거부하고 건강을 포기하고 차라리 죽음을 택한 여성을 다룬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주된 이유는 '세계 3대 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 한국사회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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