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개석(경북대 명예교수, 마산면 거주)

 
 

특히 밤공기가 좋다, 오월은. 춥지도 덥지도, 각다귀와 모기도 많지 않으니, 싱그러운 달밤에 개구리가 우는 들녘을 산책하는 즐거움도 있다.

예전에는 밤에도 못자리 물을 보러, 또 마른 논배미에 물을 잡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들에 나와 있어 춘소(春宵)를 즐기는 것은 호사로 여겨졌는데, 수리관개가 잘 된 지금은 나오는 사람도 없어서 혼자 걷는 것이 오히려 을씨년스러울 지경이고, 오가는 자동차 불빛 때문에 호젓한 길을 찾게 된다.

세상도 변하고 농촌 마을은 특히 주민이 크게 줄었다. 독거노인의 호구가 대부분이고, 빈집도 많다. 양주가 해로하는 가정은 대부분 연세가 많다. 자녀와 함께 사는 경우도 혼기를 놓진 미혼 자녀나 아내와 자녀를 도시로 보낸 아들이 노부모를 모시고 있다. 골목에서도 어린아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1920년대 초에 개교한 초등학교가 폐교 위기에 몰린 것을 보면 이웃 마을들도 사정은 비슷한 모양이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성년의 날(16일), 부부의 날(21일)이 있고, 특히 5월 15일은 유엔이 정한 가정의 날이다. 가정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휴식과 행복을 주며, 생산현장에서 힘껏 일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곳이 가정이다. 자녀를 출산하고 키워서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인적자원도 공급한다. 비록 최근 가족의 정의와 범위가 달라지고 가정의 모습도 다양하게 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도시의 가정은 이러한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농촌에는 휴식과 행복, 삶의 활력을 주는 가정은 많지 않다. 노후에 대한 대책도 없이 등 떠밀어 자녀들을 도시로 보낸 노인들이 약봉지에 의지해 홀로 또는 이웃과 함께 노후를 버티는 투쟁의 공간이 되었다. 젊은 시절 그들은 노부모를 모시고 자신을 희생해 자녀들을 교육시켰지만, 정작 그들이 자신을 의탁할 자녀들은 가까이에 없다. 꼬부랑 노구를 유모차에 의지하고 논과 밭으로 나가서 빠듯한 생계를 이을 망정, 도시에 나간 자녀에게 의탁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동네 마을회관에서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또래 노인들과 함께 밥을 지어 먹고 흉허물 없이 지내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이들이 아직 젊었던 시절 농촌에는 3대가 함께 사는 소위 확대가족이 일반적이었다. 어린아이들은 집에 남은 노인이 돌보았고, 부모가 모두 일을 나간 핵가족의 어린 자녀는 마을 노인들이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학령의 자녀를 가진 젊은 부모들은 모두 도회로 떠나고, 남은 부모들도 최소한 읍내의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쓴다.

지금 남아 있는 60대, 50대가 마지막으로 농사를 놓고, 세상을 떠나는 나이가 되었을 무렵 한 세대 뒤 농촌의 모습은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저려온다.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이 찬란한 신록과 싱그러운 봄밤의 여유를 누릴 사람들이 과연 농촌에 남아 있기는 할까.

1일은 만국 노동자의 날, 14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15일은 스승의 날, 55년 전 16일은 폭압적인 군사독재의 긴 터널이 시작된 날이다. 그리고 18일은 1980년 5월 광주와 전남 각지에서 군부독재의 총칼에 맞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국가가 정한 기념일인데, 이번 선거를 보면 박정희의 망령이 아직도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부지깽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일손이 아쉬운 요즘 농촌에서 달력의 기념일은 그림의 떡이다. 젊은이가 오월의 신록 보다 아름답게 보이는 연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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