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리도 못살던 우리네들이 소득이 높아지고 생활이 여유로워지면서 70년대부터 관광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고소득 시대를 맞으면서 그 시야가 높아져 명승지라고 알려진 곳이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관광객이 몰리고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음이 현실이다. 우리 해남도 천년고찰 대흥사를 비롯해 유명관광지와 관광자원이 타 지역에 비해 많은 지역이다. 두륜산 대흥사만 예를 들어 보자. 대흥사는 역사적으로 본다면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데 사실이라면 천년 고찰이다.

그러나 대흥사가 처음부터 유명사찰로 명성이 높아 진게 아니고 임진왜란이후 서산대사께서 1604년 묘향산 원적암에서 당신의 의발과 가사를 두륜산에 둘 것을 유언하자 사명당과 처영스님이 유언대로 대흥사에 옮겨 온 후부터 유명사찰로 변화해 오늘에 이르렀다.

또 대흥사는 초의와 추사 다산을 빼 놓을 수가 없다. 초의와 추사는 동갑내기로 초의로부터 차를 배웠고 18세기 당시 신분상으로 스님은 하대를 받았던 때라 교류가 불가능 했지만 학문이 통해 가까운 친구가 돼 대흥사를 자주 찾았었다.

대흥사의 경내 여러 당우의 현판글씨는 조선조의 각계 명필들의 필체를 감상할 수가 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천불전(千佛殿), 침계루(枕溪樓)는 '동국진체'로 이름을 떨친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가 쓴 글씨고 대웅전 경내 백설당에 걸린 무량수각(无量壽閣)은 당대 최고명필이라 불리었던 秋史 김정희 글씨며 천불전의 정문 가허루(駕虛樓)의 간판글씨는 벼루3개를 구멍 낼 정도로 글서 공부에 열중했다는 서도가 이삼만의 필적이다

그런가하면 표충사(表忠祠)는 서산대사를 주벽으로 사명당과 처영스님 세분을 모시는 사액사당이다. 간판글씨는 조선조 27왕 중 가장 명필로 알려진 정조대왕의 친필이다.

이렇듯 조선조 500년을 통틀어 내로라는 명필들의 글씨를 한곳에서 모두보고 감상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또 천불전 앞 문짝의 꽃 살 무늬는 국화, 연꽃, 모란, 백일홍 꽃들을 정교하게 나무를 조각해 만든 꽃들인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열되어 절제된 화려함이 돋보여 사찰 중에서는 우리나라를 대표 할 만큼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룬다.

이렇게 사물을 알고 들어다보면 한층 흥미롭다. '아는 만큼 보인다' 는 말은 이를 두고 한말인 듯싶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