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부터 천둥 벼락과 함께 쏟아 붓기 시작한 가을비가 새벽까지 이어진다. 남편은 걱정이다. 매주 수요일, 꾸러미(지역 친환경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배달) 배달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침에는 가랑비로 바뀌었다. 남편은 전화로 아침을 시작한다. 주문 수량을 각 농가에 문자로 알리고,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한다.

오 형님이 제일 먼저 꾸러미 물품인 미꾸라지와 배추 우거지, 묵은 지를 가지고 방문하신다. 함께 토방에 앉아 비를 바라보며 모닝 커피를 마신다. 아침은 우유와 쌀과자로 대신하고, 어젯밤(화요일) 12시까지 밴드(SNS 시스템 중 하나)로 받은 주문들을 엑셀로 정리한다.

한 시 즈음 가공 공장에서 우리집 생산물(백출, 보릿가루 등)과 미리 집에 가져다 놓은 생산물(김, 된장)을 수량에 맞게 정리하고 있는 동안 윗집 미세마을에서도 바질페스토나 무말랭이 등 자신들의 주문 생산물을 마루에 두고 간다.

2시 즈음 남편은 빈 아이스 박스가 함께 실린 트럭을 몰고 나간다. 두부, 달걀, 소시지, 버섯, 쌀 등 해남 각 곳에 흩어져 있는 생산자에게 주문 수량과 맞게 물품을 받으러 가는 것이다. 요즘은 수제(?) 멸치볶음이나 집김치가 있어서 소비자들의 입맛을 더욱 돋우고 있다. 주문 물품이 다 모아지면 주문회원들의 코스에 맞게 배달을 시작한다. 집에 안 계신 분들은 문고리에 걸어두고 전화를 하거나 열어둔 차 트렁크에 넣어둔다. '아기가 자고 있으니 초인종을 누르지 마세요!'라는 문자가 와 있는 것을 확인 못하고 초인종을 누르는 바람에 모처럼 아기를 재우고 와인을 즐기는 부부의 오붓한 저녁을 깨뜨린 것이 못내 아쉽다.

7시 10분 즈음 되어서야 남편은 면단위 배달을, 나는 해남 외 곳으로 갈 택배를 붙이러 간다. 집에 돌아오니 7시 40분이다. 내가 장봐 온 어묵, 콩나물, 대파로 감기기운을 잠재우는 음식을 하고 있는 동안, 남편의 트럭소리가 들어온다. 남편은 소비자님들께 받은 선물을 탁자 가득 꺼내 놓는다. 물김치, 생강절임, 효소... 거기다 남편이 사온 정종 한 병까지. 비가 오고, 콩나물 오뎅국이 끓고, 따뜻한 정종이 있다. 오늘 남편이 한 일은 로컬푸드라는 커다란 공룡의 콧물을 살짝 닦아준 것이지만 따듯한 정종에는 해남 로컬푸드의 장을 여는 한걸음에 기여한 뿌듯함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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