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이는 해남에서 만난 특별한 이름, 그는 내가 아직 두려움으로 해남을 서툴게 익히고 있을 때 따뜻함이 무엇인지 모습으로 보여 준 처음의 식구다. 옛사람이 서둘러 떠난 빈 집의 낡은 책상은 순자, 영순이 친근한 이름들이 아직 꿈을 꾸고 3월의 흰눈은 찰지게 내리곤 했다.

대숲 집은 십여 년 몸을 숨긴 채 바람소리로 꺼억거리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땐 빼꼭히 들어 선 대나무 사이로 햇빛이 빼꼼하게 고개를 내밀어 아는 채했다. 초식이와 나는 마루를 사이에 두고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바람소리로 흉내내곤했다. 고사리를 찾아 함께 산을 누비고 홀로 있는 어둔 밤은 서로의 목소리를 확인하며 잠이 들었다. 달빛은 서로의 존재를 신성하게 바라보도록 그윽한 눈빛을 주곤했다.

개를 키운다는 건 개에게 마치 내 목줄을 건네주는 일쯤으로 간주했던 부자유스런 시절이었는데 해남은 우리를 너무나 당연하게 묶어주었고 그가 존재하는 그 집이 얼마나 가득했었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뿌듯했다. 초봄의 키위나무아래 호밀밭은 영화속의 스크린처럼 푸르고 깊게 펼쳐지고 우린 뻘밭에 빨려들 듯이 키위나무는 안중에 없이 호밀에 넋을 빼버렸다. 그리곤 키위농사를 덧붙였다. 바빴고 분주하기 이를데없는 나날로 5월을 힘겹게 보내며 키위수정을 마친 어느 날 초식이가 심상치 않음을 발견했다.

농사가 무엇인지 농부가 어떤 것인지 배워갈 즈음 그는 죽음을 배워가고 있었는데 그것도 모른 채 있었다는게 너무 아프고 괴로웠다. 수의사선생님의 지시대로 약을 먹인 오후 그는 더욱 힘들어했고 어찌할 바 모르는 나는 물 한 모금 건네지 못했으며 그의 고통스런 호소를 가슴으로 들어야만했다. 그가 간 시간은 십여 년도 훌쩍 지났지만 내겐 언제나 향기로운 초식이, 나는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한다. 그가 있었던 공간 그와 함께 한 놀이 우리의 소통방식을 나는 아직도 잊지못한다. 그는 나에게 있어 어떤 의미였을까? 그가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람이든 모든 만남은 형태를 초월한 그 무엇임을 그는 말하려 했던 것일까? 시간과 공간은 그 너머의 무한을 일컬으며 만나야 할 인연은 거룩함을 숨긴 채 여러 현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걸 유추해보며 초식에게 이젠 안녕 이라고 말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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