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의 풀들이 문어발처럼 꿈틀거리며 나온다. 이제 막 예리한 낫으로 베어진 풀들의 말이 산밭 가득 소란스럽다. 10년 묵은 묵정밭에 콩을 심고 들깨를 심었다. 키가 넘는 억새를 예초기로 잘라내는 소리가 공포스러워 가슴 조이며 바라보았던 일도 이젠 추억이 되었다. 괭이로 억새를 캐내고 들깨를 심고 근처의 억새를 죄다 베어 한아름의 땅속 뿌리위에 억새를 놓는 일은 무척 재미있었다. 억새가 억새를 먹고 그대로 흙으로 돌아가는데는 포크렌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그날도 한참 땀을 흘리고 무덤근처에서 잠시 쉬려는데 트럭위의 마이크에서 장사꾼아저씨의 늘어진 음성이 들렸다. "나를 삽니다. 나를~~~" 어, 뭐라고 나를 산다고 이 무슨? 억새를 베던 낫을 던져놓고 혼란스러워 마이크에 더욱 귀를 기울이니 분명 "나를 삽니다. 나를" 개 삽니다, 염소 삽니다가 아니었다. '그럼 나를 판다는 것인가? 이 무슨 철학적인 말일까?'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말을 트럭장사아저씨에게 듣다니 이 무슨….

한참 후에 마이크에서 들려오는 "히나리 고추도 삽니다~~~", "마늘 삽니다 마늘 히나리 고추도 삽니다" 휴우~~ 그땐 그랬다. 하하하.

콩 심은데 콩이 났다. 줄을 떼고 심은 콩은 줄을 서서 나란히 고르게 났다. 막 뿌린 콩은 비틀비틀 흔들리며 나고 있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는 속담은 사소한 언쟁에도 자주 들먹이는 예삿말이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만고의 진리를 해남땅끝 한 귀퉁이에서 온 몸으로 받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가슴 밑바닥로부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줄을 선 콩은 나란히 말씀하시고 비틀거리는 콩은 흔들리며 말씀하시는데 나는 왜 이렇게 가슴이 따뜻한걸까.

우주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콩이며 팥이며 사람들의 애환이 어디에서든 피어나고 세상은 옹기종기 그들의 꽃밭을 가꾸고 있었던 것일까.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