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종순을 길렀던 하우스를 뒤늦게 정리하며 마음도 함께 자랐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란 마음에 남는 흔적일까, 밭을 매며 물을 주며 풀 나지 말라 사료포대를 헛골에 놓으며 나는 얼마나 성장했던가?

그때 힘을 모아 준 도시와 사람들이 함께 떠올랐다.

파도에 표류하듯이 일에 떠밀릴 때마다 내 영혼의 노래가 된 도반들도 가을을 맞이하겠지.

한켠에 고추가 심어진 하우스는 풀 속에 고이 묻혀 여러종의 풀이 대거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꽉 메우고 있을 풀들의 어지러운 비명이 떠올라 하우스 접근불허를 내리고 배회하다가 나 없는 사이 들이닥친 남편의 고추바구니를 보고서야 발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웬걸 남편의 그래서야 쓰냐는 낫질 한 번으로 휙 달아나고 혼자서 그 행복감을 다 누리게 되었다.

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우스의 열기를 더해 주었지만 영양소 가득한 풀을 소에게 먹이는 기쁨 또한 배가 되었다.

억세게 천정을 향해 질주하는 풀을 다스려 리어카에 담으며 서로 다른 질감과 느낌이 곧 그들의 삶이기에 그가 설령 풀이라는 쓸모없는 이름을 가진다해도 그의 없음이란 얼마나 삭막하며 형벌의 지옥인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그에게 내린 별빛과 달빛을 달여 풀 비린내가 되고 푸르름이 된 사건을 사랑이라 불러도 될까? 사랑이란 '있음' 그 자체의 허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의 모습을 장점과 단점으로 나누어 흥분하지않고 그냥 봐주는 것! 행동이야 여러 가지로 비칠 수 있지만 마음의 바탕에선 그렇구나!

정도로 지나치는 것을 나는 연습 중이다.

이른 봄의 하우스에서 초여름까지 고구마 종순이는 자라며 많은 관계를 불러들였다. 내가 늘어놓았던 불평을 종순이는 잘 들어주었고 애꿎은 풀들은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구마순을 자르며 아짐들이 나누시던 개똥이네 쇠똥이네 이야기도 밑거름이 되어 잘 자라 준 하우스에서 세상은 나의 생각과 말이 자라나는 밭이라는 것과 누군가에게 퍼부은 사랑이나 증오는 결국은 내가 나에게 던진 선물이란 걸 배우게 된다.

어제는 없으며 내일 또한 상상 속의 이미지일 뿐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언제 그 행복을 누리랴…. 난 오늘도 행복 연습중이다.

풀과 풀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말과 말 사이에서 나는 정령 행복하고 싶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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