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한국 영화가 있다. 높은 성적을 유지하지만 자기만족보다는 부모님의 집착에 가까운 기대에 끌려 다니며 스트레스를 받는 여학생이 등장한다. 여학생은 공부는 못하지만 자기를 이해해주는 남학생에 끌려 잠시 마음을 놓지만 성적이 떨어지면서 부모님의 멸시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오래 전 영화지만 여전히 그 이름의 의미는 우리 사회에 유효하다. 학교는 우리가 처음으로 겪게 되는 사회이고, 학생의 이름표를 달고 그곳에서 오랜 기간 엎치락덮치락 함께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성적으로 검사받게 된다. 한국사회가 성숙해짐에 따라 제도로써 학생에게 교육을 받을 기회를 허용하고 그 기회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며 교육 환경을 정비하였다. 학생에게 교육 평등을 제공하였지만 결과는 절대 평등하지 않다.

학생의 능력 차이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점수와 등수가 절대 권력을 갖는 이 상황에서 교육 결과의 평등은 모순이며 경쟁력이 없는 것이 된다.

성적이 좋으면 주변의 좋은 시선과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받는다고 모두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며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학급의 학생들을 대할 때도 시험 문제 1개를 틀려서 울상 지으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하는 학생이 있다.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칭찬과 격려를 해주어도 아이가 느끼는 고단함은 쉬이 풀리지 않는다.

행복이 자기만족이라는 개인의 영역에서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회의 접근을 막을 수는 없다. 사회에서 어떤 역할과 위치를 갖는 것은 혜택을 누림과 동시에 성과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아이에게는 많은 가능성이 있다. 성적이라는 변수 하나만으로 아이의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것은 도움으로 가장한 폭력과 마찬가지다.

기말고사를 마치고 떨리는 가슴으로 성적을 마주 할 아이들이 부디 한켠의 미소를 간직하길 바라며 "All i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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