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밭들은 산쪽으로 궁둥이를 놓고 있다. 야트막한 능선을 꼬여 밭을 일구어 낸 아낙들의 궁둥이엔 고라니 발자국이 수없이 피어있다. 밭은 몇 천번을 죽어 가슴팍에 잠든 돌들을 다 훑어낼 수 있을까, 아낙들의 생 위로 허연눈발이 내리면 비로서 달콤하고 부드러워지는걸까?

귀농 십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유기농을 고집하던 우리에게 드디어 땅이 나타났다. 구릉같은 산이 조금씩 밭으로 만들어져가는 과정은 남자에겐 신화같은 일이었다. 그는 밤새워 일을 도모했다. 그의 꿈이 용틀임을 하며 일어서는 꿈을 새벽부터 어둔 밤까지 포크레인으로 그려야했으니까.

눈이 내리고 비가 오는 날도 남자는 그의 꿈 가까이에서 집채만 한 바위를 건져 올렸다. 땅속엔 보물같은 바위가 웅크리고 앉아 비상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땅의 문을 열고 나온 바위들은 이젠 하늘문을 응시하며 일렬로 누워있다.

만평농장은 귀한 경험과 귀한 인연과 함께 왔다. 어떤 일을 한다는 건 어떤 인연과의 만남이며 어떤 방향으로 가는 어떤 것이 되어진다.

만평농장이 만들어지고 고구마를 심고 키위를 심고 콩을 심으며 행복함과 풍성함 때로 자괴감으로 괴로운 심정이 되기도 했다. 농업이란 모두 떠난 빈집에 저 홀로 피고 지는 감나무 같은 것. 속절없이 찾아 온 고향집 마당에서 푸르고 실한 잎새가 나불거리는 감나무를 보며 그가 다시 힘을 내 도약하듯이….

생명이란 서로의 가슴에서 잊혀진 사랑(행복)을 보게 하는 것, 행복은 생이 시작 된 순간에 함께 던져 진 질문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시간 너머의 경험을 시간으로 살아내는 인생이란 큰 밭을 일구는 경이로운 사건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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