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전선의 적막한 아침공기를 깨뜨리고 총성이 울리더니 이내 북한군은 최신형전차를 앞세우고 남침을 감행 불과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여세를 몰아 파죽지세로 전국을 장악한 듯 했으나 우리군은 동쪽끝부분 만은 사수해야 반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라는 전술로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을 내어주었지만 부산만은 굳건히 지켰다.

전열을 가다듬은 우리군은 미국을 비롯한 16개국 군(UN군)과 제휴 참전함으로써 같은 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 9월 28일 서울을 수복 후 압록강까지 진격 통일이 눈앞에 까지 다가왔었으나 중국이 18만의 대군을 투입하는 이른바 인해전술로 전세는 다시 역전 우리군은 1·4후퇴를 감행함으로써 전세는 원점으로 돌아와 무려 3년동안 밀고 밀리는 전쟁이 이어지다가 1953년 7월 27일 급기야는 휴전협정에 서명, 세계에서 유일한 기약할 수 없는 분단한국이 된 것이다.

한국전쟁 64돌을 맞아 분단한국의 설움을 되짚어 보고자한다. 요인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주변3국 때문인 것을 감지할 수 있다.

그 첫째로 일본의 35년간 식민통치가 없었다면 태평양전쟁직후 미소가 남북을 각각 통치할 명분이 없고, 둘째로 한국전쟁당시 9월에 반격을 가해 우리 군이 압록강까지 진격 했을 때에 중국이 인해전술로 맞서지만 안았다면 그해 통일이 이루어졌을 것이고 셋째, 소련군은 일본히로시마 원자폭탄 2차 투하일인 1945년 8월 8일 에서야 태평양전쟁에 뒤늦게 뛰어들어 1주일전쟁도 치르지 않고 종전이 되자 북한을 점령할 명분을 내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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