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새벽 2시 30분 즈음 이다. 잠결에 개 짖는 소리를 인식하기 시작한지는 10분이 넘었다. 개가 풀렸는가 싶어 갑자기 걱정이 인다.

남편도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방문을 열고 나간 남편은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나도 '개가 풀렸구나' 생각하고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어둠속 처마 밑에는 할머니가 서 계셨다. 가끔 이른 아침 볼일이 있어 마을 어르신들이 찾아오시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각이다.

할머니는 아흔이 넘으신, 우리 동네에서 제일 연세가 많으신 어른이시다. "이게 어쩐 일이세요?"하고 신발을 주섬주섬 신고 다가간다. 할머니는 길을 잃었다고 하신다. 집을 찾아줄 수 없냐고 하신다. 할머니는 지금 남의 동네에 와 있으신 줄 알고 계신다. 우리도 낯선 사람으로 바라보신다.

일주일마다 마을에 오셔서 묘목을 가꾸는 아드님 곁에 앉아 지긋이 지켜보시고, 동네 어디에서 만나든 반갑게 웃으며 맞아 주시는 분이시다.

오십 미터도 안 되는 옆 골목 끝에 있는 할머니 댁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계속 집을 못 찾을까봐 두려워하신다.

조금 걷다보니 얇은 대나무 지팡이마저 부러진다. 온전히 내 팔에 의지한 할머니의 가냘픈 팔의 무게를 느끼면서 조심조심 발을 옮긴다. 할머니댁 마당에 들어서서도 할머니는 남의 집에 오신 듯, 댓돌 끝 쪽에 걸터앉으신다.  "여기가 할머니댁이에요.

이제 들어가서 주무세요"하니 "남의 집에서 자면 우리집은 누가 찾아주나"하신다. "아드님이 오실 거에요. 저희가 아드님 알아요"  아드님의 이름들을 또렷이 대시고,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신 후에야 마음을 놓으신다.

"어디서 많이 본 양반들 같은데..."하셔서 "저 집에 이사 온 젊은 부부잖아요. 저희 콩도 골라 주시고"하고 말씀드리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신다.

남편이 방안의 불을 켠다. 할머니께서 우리의 권유로 집안으로 들어가려다 일복하나를 발견한다. 할머니가 벗어 놓으신 일복이다. 그제 서야 "내 옷인데!"하시며 편안해 지신다. 방안의 세간을 둘러보시고 "우리 집이네"하신다.

시골에는 동네마다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 부부같이 자식이 없는 노인들도 많이 늘어날 것이다. 진정한 공동체성의 필요성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하며 새벽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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