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원 천(해남중 교사)

조 원 천(해남중 교사)
조 원 천(해남중 교사)
한 대학생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게시판에 붙인 대자보가 장안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철도 민영화에 맞섰다고 하루아침에 수천 명이 직위해제 되고, 평생을 살아온 터전에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해서 칠순, 팔순의 노인들이 음독을 하는 세상. '해고는 살인이다', '같이 살자'며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다 회사에서 내몰린 어려움에 스스로 목숨을 내 던진 사람들이 스물이 넘어도, 추모천막마저 맘대로 칠 수 없는 세상에서 자신은 안녕할 수 없다고, 당신들은 안녕하냐고 묻는 그의 질문에 여기저기서 응답이 이어지고 있다.

유례없는 취업난에, 학점과 스펙 쌓기로 대표되는, 자신의 앞자락만을 가리기에 급급한 듯 보였던 젊은이들이 이웃과 세상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점이 반갑고 든든하다.

이제는 대학생들을 넘어 고등학생들도 안녕에 동참하기 시작했다니 새벽부터 밤까지 네모난 교실에서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줄 알았던 아이들이 대견하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안녕'에 응답하는 벽보를 붙인 제자를 경찰에 고발했다는 교장선생님처럼 젊은이들의 건전한 비판정신과 정의감을 의식화라고 매도하며 색안경을 쓰는 어른들 때문에 상처받는 아이들이 생길까하는 것이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홍수 속에서 이제는 어떻게 하면 안녕할 수 있을지 해답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이 그 해답을 고민해보고 함께 행동하는 것까지 발전한다면 역동적인 우리사회에 또 하나의 신화를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의 '안녕'이 이어지는 속에서 나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안녕한지 생각해본다.

아침 8시가 좀 넘으면 학교에 와서 이 교실 저 교실 옮겨 다니며 일곱 시간 수업을 받고 비슷한 책상과 의자가 있는 학원으로 옮겨가서 열시가 넘어야 집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이 안녕한지? 얼굴을 맞대고 말하기보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교통하며 컴퓨터 화면의 아바타를 몰고 적군의 기지를 쳐부수는 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들의 정신 상태는 안녕할 수 있는지? 아이들이 안녕할 수 없는 이유가 아직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이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있는 나는 아이들의 안녕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이 넘친다. 벌써부터 교실이 붕괴되고 있다고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고 아우성들은 많았다.

그에 덧붙여 이렇게 저렇게 해결책들이 돌아다닌다. 교실을 바꿔가며 수업하고, 새로운 기자재를 사들이고, 아이들 변화에 맞춰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다. 선생과 학교를 평가해서 성적이 나쁘면 도태시킨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학교는 좋아지지 않았고 교실 붕괴가 멈췄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세상에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학교는 세상을 정확히 반영한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가 소수의 사람을 승자로 만들고,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다수의 사람에게 가혹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부모의 칭찬을 받고 승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학교가 즐겁지만 등수를 매기기 시작하고 이길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리고 내가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는 중학생이 되면 자포자기가 된다.

이 아이들에게 그저 열심히 공부해서 친구들을 아래로 떠밀면서 너는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고 가르쳐서는 아이들의 안녕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을 바꾸는 길에 선생들이 나서야하고, 부모들이 나서야 한다. 아이들이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과 학교를 만드는 것이 교육 혁명이다. 그 길에 나서기 위해 스스로 물어본다.

당신의 제자는, 당신의 아이는 지금 안녕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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