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상 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 대표)

 
 
해남만의 얘기는 아니다. 남해안 곳곳의 전승비 기념비 송덕비 등에 유난히 우뚝한 이 한 말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여덟 글자 얘기다.

해남에도 진도에도 여수에도 있다. 몰라서 그렇지, 더 있을 것이다.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육성이나 다름없는 말씀이다.

이 지역의 가장 큰 깃발 중 하나다. 물론 '해남의 깃발'이기도 하고.

가정법(假定法)이다. '若無~'는 '(만약) ~이 없다면(아니라면)'이라 새긴다. '是無~'는 앞 구절의 대구(對句) 즉 짝이다. '~도 없다(아니다)'의 뜻, '호남이 없다면 국가가 없다'는 말이다.

호남은 요즘 행정구역으로 전라남북도와 광주. 때로 서로 벋대기도 하는 영호남의 심리적 구도때문에 이 말의 의의나 해석을 두고 말들이 적지 않음을 지적한다.

우선 '난중일기 안에 정식으로 들어간 문구가 아니니 말하자면 본문이 아닌 곁가지다, 충무공이 지나가는 인사로 한 말에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심정은 뭐냐?'하는 얘기다.

산천초목이 키득키득 웃을 일, 정치적인 표현으로 '언급이나 평가할 가치도 없는' 시시한 얘기다.

'난중일기'라는 책은 없었다.

충무공께서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꼼꼼하게 새긴 그때그때의 상황과 심정 등이 너무도 귀중해 후손들이 그러모아 한 책으로 엮고 거기에 붙인 이름이 '난중일기'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선정됐다.

'약무호남 시무국가'는 혹은 장군께서 서애 유성룡에게 보낸 서한에 든 것이라고도 하고, 혹은 사헌부 관리인 현덕승에게 쓴 편지에 들어있는 것이라고도 하는 몇 가지 설이 '시민들의 글'로 나돈다.

그런데,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말이라고? 승리와 전투의 여러 상황을 보고하는 서한은 '공식문서'다.

누구네 감이 더 맛있네, 누가 누구와 어울려 놀아났다네 하는 싱거운 말장난과 구분하지 못하는 황당한 생각이다.

실없는 웃음 밖에 더 무엇이 있으랴. 그러나 그런 생각을 품는 뒤틀린 마음들도 세상에 있다는 사실만은 기억해야 한다.

또 하나는 조선의 식량 대부분을 대는, 말하자면 '밥줄'인 곡창 호남에 대한 충무공의 경제지리학적 평가였는데 이를 '호남의 인격(人格)'을 가리키는 이미지로 돌려 써먹는다는 얘기다. 또 있다.  호남이 (왜군에 의해) 함락되면 서해바다나 충청 경기 할 것 없이 차례로 무너진다는 '전략상 개념'의 표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도미노 이론이다.

역사 뒤져보면, 이 말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당신(충무공)을 믿고 따라 획기적인 배(거북선)도 만들고 연전연승 믿기 어려운 전투력과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준 장교들과 병사들에 대한 감격에 겨운 인사, 고마움과 놀라움의 표시였다. 이 말을 질투하는 이들의 여러 표현은 호남인의 너른 가슴으로 보듬으면 된다. 짜잔하게 같이 뒹굴면 어디 그게 어른인가.

호남인의 마음 그 충정과 인심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들 몇몇'이 그 마음을 훼손하려는 논리로 들고 나선 (호남에 대한) '경제지리학적 평가'나 '도미노 이론상의 전략적 중요성' 또한 실은 호남의 압도적인 가치를 드러내 주는 것임을 다시 본다. '욕'이라고 비아냥거린 얘기가 실은 호남의 중요성에 대한 더 큰 평가인 셈이다.

왜 그럴까? 원래 그래서다. 호남 없이 어찌 나라 있으랴, 그 말씀은 여러 갈래로 벅찬 진리다. 그 보람을 가슴에 간직하고 묵묵히 살면 된다.

'해남의 깃발'이다.

충무공의 충정과 역량을 제 때 꿰뚫어보고 나라가 위급할 때 한결같이 그를 도와 목숨을 바친 어진 민초들, 위대한 우리 할아버지들이 나라를 구할 때 들고 흔들었던 그 핏빛 깃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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