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 숙 (전남문화관광해설사협회장)

이 연 숙 (전남문화관광해설사협회장)
이 연 숙 (전남문화관광해설사협회장)
1597년 명량대첩을 거둔 이순신장군은 고군산도까지 연해안 해상순시를 하고 다시 11월 17일 우수영에 입항한다. 그리고 나서 열흘 후 쓴 내용이다.

양력 11월 26일(음력10월18일). 맑음

바람이 자는 것 같았으나 우수사는 배를 출항할 수 없어 바깥 바다에서 잤다.

강막지가 와서 알현했다. 임계형.임준영이 들어왔다. 일기의 내용으로 보아 416년 전 26일은 바람이 불었으나 날씨는 맑았다.

2013년 11월 26일 역시 날씨가 좋았다.

지리산 정상에 눈꽃이 피어오른 화요일에 공무원연수팀 86명을 인솔하여 '남도 이순신길'을 다녀왔다.

'남도 이순신길'은 두개의 길을 하나로 통합한 길이다. 하나는 서울에서 경남 합천 초계까지 가는 장군의 백의종군로 중 전남을 경유한 구례·순천일부의 백의종군로와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수임 받은 후 다시 구례로 입성해 명량해협까지 들어오는 수군재건로이다.

두 길은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의 길이기에 전남도는 하나로 통합해 '남도 이순신길'로 명명했다.

이 길은 인간 이순신이 비움으로 승리했던 정신을 담은 길이며 고뇌의 길을 미래 희망으로 승화시킨 길이기도 하다.

3번의 파직과 2번의 백의종군 가운데 가장 절망적이고 힘든 시기에, 되려 뛰어난 행보와 구국의 힘을 모아 명량대첩을 이루게 된 배경의 길이며, 시대의 갈등과 탐욕을 비움과 성찰로, 수직을 수평으로, 집착을 나눔으로, 단절을 소통의 문화로 이끌었던 길인 것이다.

시대적 혜안의 통찰력으로 신뢰와 포용으로 승화시켰으며 자주·애민·보국정신으로 조선을 살렸던 호국의 길이였다.

군인이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는 것은 충효사상에 앞서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애민정신이였다.

1597년 6월 3일자에 백성들이 주는 것 받아먹지 말라고 일렀음에도 받아먹었던 종에게 쌀을 돌려주게 하고 매질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관리가 그것도 백의종군하는 피폐한 상황에서 백성들에게 절대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무서운 가르침을 이 시대는 본받아야 한다.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혁신적 정책으로 홀로 서기했던 장군께서 창조, 기록, 정보, 인맥, 소통, 사랑, 자립 등 비워내는 정신을 길에서 가르치고 있다.

시대적 감각과 리더십은 진실한 소통에 기반을 뒀듯이 국난을 극복하는 통합의 기회도 인간관계에 기인한 것이였다. 이러한 원천이 신뢰받은 최고의 군대를 만들고 인재를 모으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달여 남은 금년의 시간을 명량해협까지 들어오는 '남도 이순신길'을 걸으며 갈등과 불통을 정리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걷기에 좋은 계절은 아니지만 날씨가 풀리면 걷기를 권한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행복했거나 아팠거나 저마다 사연을 품고 길속으로 들어서면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 속에서 길이 안내한 침묵의 길을 걸어보자.

장군의 침묵속에 흐르는 소통의 길, 상생의 길을 교훈으로 삼고서…….

1597년 11월 29일(음력 10월 21일) 난중일기

날씨 : 밤 두시쯤 비오다 눈오다 했다.

바람이 몹시 추웠다.

뱃사공이 추워 얼까 걱정이 되어 마음을 잡지 못했다.

오전 여덟시부터 바람이 불고 눈이 펑펑 내렸다.

중략

바람불고 눈이 종일 내렸다.

오늘은 416년전 눈이 오면서 바람불고 추웠던 난중일기속의 그 울돌목을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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