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 대표)

 
 
'깃발 날린다'고 한다. 날릴 깃발 있다면, 신나지! 쉬울까? 깃발 날리기 싫은 사람은 없다.

새로운 시각, 창조경제, 이야기의 시대 등 말이 많다. 이제까지처럼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어떤 메시지는 사람을 초조하게 하기도 한다. 잘 살자고 하는 건데, 그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되겠는가? 좀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주위를 살펴보자.

나비가 어디 함평 것이던가? 화사한 그 날개에 태극무늬와 동네 이름 찍혔던가? 나비를 먼저 잡아채 '내 것'이라고 깃발 올린 그 동네에 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 왔을까? 이제 와서 '우리도 나비축제 합니다!'라며 깃발 올린다면 모두들 웃을 것이다.

해남의 '가진 바'는 무엇인가? 해남의 깃발에는 무엇을 수놓아야 모두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까? 그런 시선이 팍팍 꽂혀야 바람이 일고 깃발이 나부낀다.

일 때문에 요즘 순천만을 두 번 다녀왔다. 제2의 고향인 순천을 위해서는 기뻤고, 제1의 고향인 해남을 생각하고는 질투가 났다. 30년 전 혼자 거닐곤 했던 갯가 그 황량한 갈대숲에 이렇게 인류의 시선이 모아지다니. 돈도. 순천, 깃발 날리네!

하늘에서 '청정 자연의 보금자리'라는 이름이 감 떨어지듯 떨어지진 않았을 터. 순천은 어떻게 그 이름을 찾아 일궜을까? 실은 해남이 그보다 더 조건이 좋은데.

엉뚱한 생각이 났다. 함께 문학 공부를 해 보자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라는 말이 있다. 문학용어다. 뜻은 간단하다. 매일 익숙하게 보는 것들을 생전 처음 보는 것인 양 새삼스럽게 느껴보자는 것이다. 거리를 좀 두고 다른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본다는 것, 말이야 쉽지만. 

기왕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겠다.

충무공을 도와 왜적을 무찌른 나라사랑의 이미지는 남해안 곳곳이 나눠 가졌다. 그런데 울돌목 해전의 그 기적은, 외지에서 필자가 보기에는, 거의 진도의 몫이 되어 있다. 대흥사 초의선사의 차(茶) 전통은 강진 보성 하동으로 옮아갔다.

전복과 청정 휴양 건강 이미지는 완도가 잡았다. 전국을 꽉 잡았던 김(해우), 이제는 서해안 것이 좋다네, 서울 사람들이. 매생이는 장흥에서만 크나? 강진이 뭐 탐사1번지라고? 통계 들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대체적인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땅끝'은 훌륭한 제목이기는 하지만 '끝난다'는 이미지는 불리하다. '끝이면서 거대한 그 무엇인가의 시작'이라는 희망과 도전의 모양새를 아직 해남은 짓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도 '낯설게 하기'가 동원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흥사 두륜산이야 이미 '전국구'다. 그런데 미황사 달마산을 산 좋아하는 이들이나 '좀 다닌다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는, 해남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개발 늦어서 그런가? 덜 번지레한 우리 고장 사람들의 마음, 그 따뜻한 둥지를 이야기로 만들 생각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늘 가고 싶은 그 식당, 해남에서보다 전국에서 더 유명하다. 혹 질투로 배 아프기 전에, 그 이미지를 활용할 생각은 어디까지 했을까? 

해남 깃발의 큰 제목은 무엇인가? 절임배추인가? 팬션인가? 배추는 괴산도 홍성도 한가락 한다. 팬션은 전국에 널렸다. 해남군의 조직들은 아직 큰 틀의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 '해남의 큰 이름'은 누가 외칠까?

'우리의 것'을 새롭게 본다는 것이 오늘의 주제다. 함께 부대끼지 않으면서 함부로 하는 이런 말 좀 주제 넘는다. 그리고 다 아시는 얘기다. 그러나 새삼스런 이 얘기가 달콤하진 않겠지만 필요할 수 있다. 낙낙한 마음으로 횡설수설을 용서해 주시기 바란다. 깃발 날리는 해남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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