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숙(전남문화관광해설사협회장)

이연숙(전남문화관광해설사협회장)
이연숙(전남문화관광해설사협회장)
가을 풍경이 맑고 그윽하다.

그리하니 사람의 마음도 깨끗해지고 고요가 따른다.

한로(寒露)와 상강(霜降)이 지나면 곧바로 겨울로 접어든다는 입동(立冬)을 앞둔 절기에 농가월령가를 재음미 해본다.

농가월령가는 한 해 동안 힘써야 할 농사일과 절기마다 알아두어 야 할 세시풍속 및 지켜야할 예의범절 등을 담았다.  

월령체로 기록한 작품이기에 농촌에 뿌리를 둔 나로선 24절기 중 한 절기를 만날 때 마다 늘 새롭게 다가오는 노래이다.

이 철의 월령가인 9월령을 들여다보면 「구월이라 계추(季秋) 되니 한로(寒露), 상강(霜降) 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 기러기 언제 왔노

벽공(碧空)에 우는 소리 찬이슬 재촉는다.

만산홍엽은 연지를 물들이고 울밑에 황국화는 추광을 자랑한다.

구월구일(중구) 가절이라」  (중략)

한로와 상강은 24절기상 17번째와 18번째의 절기로서 양력기준으로 15일 간격으로 배치되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24개의 절기를 순서로 표시하면 첫 번째 절기를 입춘, 두 번째를 우수, 세 번째 경칩, 네 번째 춘분, 다섯 번째 청명, 여섯 번째 곡우……. 17번째는 한로, 18번째가 상강이다.

나열하는 순서에는 숨은 과학이 들어 있다.

짝수 절기는 음력과 관련이 있는데 둘째 절기인 우수는 음력1월, 넷째 절기인 춘분은 2월, 여섯 번째 절기인 곡우는 3월에 들도록 하고 18번째 절기인 상강은 음력 9월에 들도록 했다.

이게 어긋나면 공달(윤달)을 넣어 맞춰서 음력과 양력의 조화를 이루었으니 지혜롭기 그지없다.

제비 날아가고 돌아오는 기러기 떼는 이슬과 찬서리를 내리고 사람들은 겨울문턱으로 들어선다.

그동안 농사일로 바쁜 혹서기의 여름을 지내고서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하다.

풍성한 가을걷이를 보며 배고픔으로 시름했던 기억 때문에 객지에 나간 자식들을 문득문득 떠올리는 계절이 되었다.  소매 끝으로 들어오는 바람결을 느끼며 마을 어귀 몇 번이고 내다보는 여유로움도 바로 지금부터이다.

 천리밖에 나가있는 자녀들이 하루 종일 차에 부대끼면서도 고향을  찾아 올 수 있는 것은 기다려주는 부모님과 고향이 있기에 가능하지만 곧 자연에 순응하는 절기의 자연스러움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시절이 바쁜지라 마음속의 달을 잃어 버렸고 귀뚜라미의 소리마저 소음으로 들리는 시대에 월령가의 가을타령은 궁상맞은 넋두리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농사와 세시풍속, 예의범절과 관계 지어 자연의 흐름을 담는 24절기는?현대를 사는 지금도 상통한다.

가을은 서서히 떠나지만, 또 다시 사시사철이 다가오고 절기는 연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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