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웅 스님(해남군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

얼마 전에 도시에 나갈 일이 있어 모처럼 대형마트에 들러 장을 보았다.

마침 주말이라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당연히 계산대에는 긴 줄이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계산원 아주머니가 일이 서툰 듯 여러 번 실수를 반복해 계산이 지연되자 내 바로 앞에 서 있던 젊은 여성이 들으라는 듯이 혀를 차며 "아 진짜, 짜증나네.

여기는 매장관리를 어떻게 하는거야? 고객불만 접수창구 어딨어?" 하면서 대놓고 계산원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것이 아닌가!

중년의 계산원 아주머니는 연신 붉어진 얼굴로 "죄송합니다. 고객님"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며 주눅이 든 모습으로 그 젊은 고객의 물건을 계산했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허겁지겁 계산을 마치는 것이었다.

못해도 이모뻘은 되는구만, 젊은 고객의 처신하는 모양새가 하도 어이없어 한참을 쳐다보고는 속으로만 "젊은 사람이 너무하는구만"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다 해남으로 오는 차 안에서 문득 마트에서의 젊은 고객을 다시 떠올렸다가 가슴 한켠이 서늘해 졌다.

그 젊은 여자의 얼굴을 한 나도 있지는 않을까?

"고객은 왕이다"와 같은 구식 문구에서부터 "고객이 만족 할때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는데다가, 가전제품 A/S의 신속함과 택배서비스의 빠름에 길들여지다 보니 나도 모르는 동안 '모든 서비스는 빠르고 신속하고 싼 것만이 최선'이라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관점을 갖게 되지는 않았을까?

혹시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사람들의 노고를 '고객'이니까 당연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우리는 흔히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를 '소비자'로서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상황에 따라서 우리는 '소비자'인 경우도 있지만 서비스의 '생산자' 혹은 '제공자'이기도 하다.  즉, 마트 소비자가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은행 서비스의 생산자가 된다는 의미이며, 실제로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이런 입장에 놓여있는 것이다.

잠시만 서비스 제공자로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내가 마트에 가서 관련 서비스를 받는 것은 매일 하는 일이 아니지만 그 일을 하는 노동자는 매일 매순간 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서두르고 닦달한다면 그의 삶 전체가 고달프고 바빠진다.

모든 사람은 빠른 일처리에 너무 시달리지 않고 일한 시간만큼 충분한 돈을 받음으로써 어느정도 삶의 여유를 갖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 바람이 서로 다르지 않은데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서로 조금 더 기다려주고 배려해 주면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것이 되어 의도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여유를 지켜주는 셈이 되지 않을까?

단순한 선의가 아니라 결국은 나의 삶의 여유를 지키기 위해 타인의 삶의 여유를 인정하고 지켜주기 위해 '빠르고 신속하고 값싼' 서비스가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기다리던 A/S 기사가 늦게 도착하더라도, 조바심치며 원망하지 않으리라. 한 시간정도 더 기다린다고 한들 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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