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이 회수를 넘어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맛난 과일이라도 기후와 토질에 맞지 않으면 시금 털털 먹지 못할 열매가 된다는 말이다.

해남 읍내의 두 중학교에서 일 년의 시차를 두고 작년과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교과교실제'라는 제도에 꼭 들어맞는 금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교과교실제가 무슨 제도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은 TV나 영화 등에서 가끔 보이는 미국 학교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치면 선생님은 교실에 머물러 있고 학생들은 복도에 있는 사물함에서 부리나케 다음 시간 교재를 준비하여 자기가 배울 선생님의 교실을 찾아간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교과교실제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TV에서만 보던 미국 풍경이 수도권에서부터 차차 시행되기 시작하더니 전라남도에서도 4~5년 쯤 전부터 하나씩 실시학교를 늘리고 있는 중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교실에 가만히 앉아 다음 선생님을 기다리면 됐는데 짧은 휴식시간에 생리적 요구를 처리하고 다음 강의실까지 찾아가야 되니 바쁘고 불편해졌다.

교사들의 경우는 어떨까? 교사가 이동하지 않고 한 곳에서 수업할 수 있으니 과목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기자재나 보조교구를 교실에 배치해 두고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고 자신의 강의형태에 맞게 학생의 좌석배치 등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다. 수업에 이로운 점이 많다면 더 재미있고 수준 높은 수업을 들을 수 있으니 학생들에게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교과교실제를 시행하고 있는 해남지역 두 학교의 속내를 보면 이로운 점을 전혀 살릴 수 없는 형편이다. 기존의 학교 건물을 이용해 교과교실을 만들다 보니 교사 수에 비해 교실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만 하더라도 사회교사 수는 4명인데 비해 사회과 교실은 2개에 불과하다.

이 교실을 나도 쓰고, 다른 선생님도 써야 하니 그 교실을 자기 식으로 활용할 수 없어 이 제도의 유일한 장점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직도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선생님들은 제도 시행 전처럼 이 교실 저 교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에 불편하고 교육에 방해되는 요소는 너무 많아 일일이 지적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교실을 이동해야 하는 학생들의 불편은 앞에서도 거론하였지만, 학교 관리와 생활지도면에서도 이 제도는 큰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과거의 제도 아래서는 학생들이 생활하는 교실에 사물함을 두고 책이나 준비물을 보관하게 하였지만, 새 제도 시행으로 학급에 사물함을 두지 못하고 홈베이스라고 불리는 일정 장소에 모든 학생들의 사물함을 모아 놓게 되니 교과서와 준비물이 분실되는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CCTV의 눈을 빌려 친구와 제자를 감시하게 되었다. 또, 사춘기의 예민한 학생들 생활지도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담임교사와 학생들 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얼른 학급으로 달려가 학생들과 이야기 할 수 있던 것이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녀야 한다.

짧은 지면에 더 많은 문제점을 적을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더 큰 걱정은 이런 문제가 짧은 시일 안에 해결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학교 현장의 여러 가지 불편과 우리 실정과 맞지 않음을 호소하는 교사들에게 책상에서 정책을 입안하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관료들이 아직도 선진제도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들에게 우리 학교 학생이 한탄하듯 나에게 한 말을 들려주고 싶다. 

"선생님. 선생님들 21명이 다니시면 될 것을 왜 700명이 정신없이 하루 종일 뛰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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