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례 푸른영상 독립영화감독

사고 후 첫 외출을 했다. 내가 간 곳은 3월 19일에 열린 ‘장애인 탈시설 정책 연구 지원 사업’ 보고회였다. 

2006년에 우리는 철원으로 이사할 계획이었다. 남편이 철원에 있는 장애인시설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혼 전부터 장애인 공동체를 꿈꾸던 우리는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서울을 떠나지 못했다. 직원들이 먼저 나서서 시설 비리를 폭로하며 사회문제가 되자 법인 이사장은 시설을 기부했고 덕분에 형량이 대폭 줄었다. 서울시는 새 운영주체를 공개모집했고 남편의 직장에서 그 시설의 운영을 맡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의 법인에서는 ‘관리자까지 100% 고용 승계, 9억5000만원 배상’을 조건으로 등기이전을 미뤘고 결국 서울시가 졌다. 지금도 서울시의 지원으로 그곳을 운영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나는 무섭다. 소송을 진행하던 중에 남편이 철원에 다녀와서 들려준 이야기를 내 개인 블로그에 올렸는데 직원들이 몰려와서 악플을 달았다. 그 시설에서는 10년 동안 250여 명의 장애인들이 죽었는데 어떤 경우에는 맞아죽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내 블로그를 감시하고 있으니 공포는 컸다. 결국 나는 블로그를 닫았다. 그곳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곧 그렇게 되었다.  

한참 후에 그곳 이야기를 들었다. 인권활동가들이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인 인권사항 실태조사를 진행했는데 김유미 님이 그 곳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체육시간에 쓰는 매트 있죠, 머리를 짧게 깎은 장애인들이 다 그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더라구요. 바닥이 차니까.”

내가 블로그에 썼던 내용도 비슷했다. 11월인데도 불을 안 땐다며 걱정하던 남편의 이야기를 썼다가 블로그까지 닫게 만들었던 그들은 당시 비마이너 기자였던 김유미 님도 비슷한 방식으로 스토킹했다고 한다. 여전히 그 사람들은 서울시의 돈으로 그 시설을 운영하고 있고 현재의 이사장은 2006년에 이사장이었던 사람의 아들이다. 그곳 장애인들은 여전히 머리를 짧게 깎은 채 매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을까? 여전히 국그릇에 반찬과 밥을 몽땅 말아넣은 밥을 먹고 있을까? 나는 어쩌면 내 삶의 터전이 되었지도 모를 철원의 시설과 그 곳의 장애인들을 잠시 떠올렸다.

나는 잠시 떠올렸을 뿐이지만 김유미 님은 2006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2006년 그 때에는 시설민주화를 외쳤던 인권활동가들은 지금은 탈시설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첫번째 발표자였던 김유미 님의 글에는 그 곳에서 탈출한 조상지 님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조상지 님은 007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어머니의 활동에 힘입어 지금은 세상에 나와 잘 살고 있다. 오늘 보고회 자리에서 발표된 글들은 이후에 ‘목소리들’이라는 책으로 발간된다고 한다. 빨리 책을 보고 싶다. 

철원에는 가지 못했지만 나도 올해부터는 시설에서 자립한 장애인들과 ‘동네에서 뮤지컬 만들기’ 사업을 같이 한다. 평생을 시설에서 살다가 자립해서 서울주택도시공사의 지원주택에 살고 계신 분들. 자립 2~3년차인 이 분들이 어떤 뮤지컬을 만들지 기대된다. 소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분들을 만난다. 그 목소리들이 기대된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