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원 해남등대원 원장

경북 예천에는 말 무덤이 있다. 

타는 말(馬)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 즉, 언총(言塚)이 있는데 말 그대로 말(言) 무덤이다. 문중에 흉흉한 일이 휩싸일 때마다 여러 문중 어르신들이 언총에 모여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 그 쪽이 걱정 돼서 하는 말인데…” 등 남을 쉽게 비판하고 판단하는 말들을 모아 말 구덩이에 묻었다고 한다. 즉 말 장례를 치르는 것인데 신기하게도 그러고 나면 다툼이 수그러진다고 한다. 

우리는 상대방을 위한다며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고, 또 누군가를 가르치려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어떤 말을 하느냐, 어떻게 말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소통과 관계회복에 있어 더 중요할 때가 종종 있다. 입이 아닌 귀를 먼저 내어 줄 때 상대방의 마음이 열리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미안합니다” 등등의 말을 진심으로 하는 사람. 표정을 온화하고 부드럽게 만들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수고와 노력을 하는 사람. 난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우리나라에는 말과 관련된 속담이 많다. ‘말이 씨가 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제일 날카로운 칼은 사람의 혀다’, ‘관 속에 들어가도 막말은 하지 말아라’ 등등. 그만큼 말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예전에 TV를 보는데 연예기획사 대표에 대해 주변의 평이, 입을 안 열면 좋은 사람인데 입만 열면 없는 빚도 천냥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천성으로 고운 말씨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마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사용하는 말의 강도, 말의 속도, 말의 높낮이, 그리고 말의 밀도 등을 신경 써야 그나마 관계유지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이 타인의 손길과 언어라고 한다. 말을 번지르하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말이라도 유연하고 상황에 맞는 따뜻한 한마디에 우리는 공감을 하고 경청을 한다. 우리의 뇌는 시각으로 먼저 받아들이고 그 다음이 청각이라고 한다. 상대방을 향한 온화한 태도와 온화한 말씨는 좋은 사람들을 내 곁에 두는 즉 스스로 인복(人福)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험담은 살인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다. 살인은 한 사람만 죽이지만 험담은 퍼트린 사람, 듣는 사람, 험담의 대상이 된 사람 즉 세 사람을 죽인다고 탈무드에서도 말을 삼가라며 가르친다. 몸에 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말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는 생채기가 되어 평생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그래서 극한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필터링 없이 본인의 밑바닥을 보이는 최악의 모습을 보이지 말고 최소한의 품격을 남겨 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린 인격을 가진 만물의 영장이 아닌가.

말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그 기능이 발휘된다. 그런데 자기 말만 앞세우며 자만에 빠진 사람은 무시당할 확률이 높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은 그 침묵으로 인해 오히려 더 깊이가 있어 보이고 존중을 받는다. 그렇지만 침묵보다 더 필요한 것은, 때에 따라 필요한 적절한 말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언 땅을 녹이고 그 곳에서 싹이 나게 하는 봄 햇살과 같기 때문이다.

불교 ‘잡보장경’의 무재칠시(無財七施)에 재산 없이도 그냥 베풀 수 있는 7가지 보시가 있는 데 그중 ‘언시(言施)’, 즉 부드럽고 다정한 말로 상대방을 감동시키고 즐겁게 한다가 들어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심이 담긴 말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 시키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 덕담이 다른 사람을 성공으로 이끌어 주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