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례 푸른영상 독립영화 감독

작년 8월 30일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날은 해남신문 마감일이라 쓰던 원고를 조금만 더 손을 봐서 밤에 보낼 계획이었는데 퇴근길에 교통사고가 나고 말았다. 

마감날 펑크는 교통사고보다 더 큰 문제라서 구급차에 실려 가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가장 먼저 해남신문 편집국장이 떠올랐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서 휴대전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고심 끝에 구급대원의 전화기를 빌려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작은책 안건모 대표께 해남신문에 사고소식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작은책 연재글을 보신 분이 해남신문 필자로 나를 추천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그동안 해남신문에 글을 쓸 때면 안건모 선생님과 상의를 했었다. 9월 1일자 해남신문에는 어떤 글이 실렸는지 궁금하다. 돌발 상황을 수습하느라 애썼을 해남신문 관계자분들에게 그리고 독자여러분들에게 너무 늦었지만 죄송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사무실 선배는 “뭘 하려고만 하면 사고가 터진다”며 안타까워했다. 

우리는 2주일 후에 해남에 갈 계획이었다. 해남에는 현재 사무실에서 제작중인 ‘지하, 흰 그늘’의 주인공 김지하 시인이 처음으로 정신병 진단을 받았다고 알려진 해남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생전의 김지하 시인은 해남병원 원장님과 친했다고 하니 시인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별세와 가난 때문에 쫓기듯 떠나온 고향 해남을 존경하는 선배감독의 안내자로 다시 찾을 생각에 나는 한껏 들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들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사라져버렸고 2024년 첫 글을 쓰는 지금까지 나는 병원에 있다. 사고규모가 커서 복부출혈과 다발성 골절로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거치며 수술을 하고 지금은 한방병원에서 재활치료 중이다. 

회복이 더뎌서 산재보험을 신청했는데 이런 저런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남편에게 연락을 한 근로복지공단 직원이 전화를 끊기 전에 “근데 ‘아이들’ 만든 류미례 감독님 맞아요?” 라면서 자신이 심사에는 아무런 도움을 못 주지만 쾌유를 빌어줬다고 한다. 남편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마지막에 울컥 하고 끊으셨어.” 

내가 만든 ‘아이들’은 ‘일하고 싶은 엄마와, 엄마와 놀고 싶은 세 아이의 12년’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준비 없이 결혼해서 좌충우돌하며 보내온 세월에 대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부모들이 공감해주었다. 특히 경력단절을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는 여성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내 손을 꼭 잡아주기도 했다. 

사실 사고 후 조금 힘들었다. 사고 전에도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독립영화에서조차 매끈한 영화들이 대세인데 시류에서 벗어나 나이만 먹어버린 나 같은 사람의 투박한 영화를 누가 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 직원의 격려에 힘이 났다. 잊고 있었지만 나를 기억하고 내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는 것이다. 

나는 튼튼해져서 돌아갈 것이다. 돌아가서 올해에는 꼭 영화를 완성할 거라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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