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길 유허비ㆍ병풍산ㆍ마을 소나무 눈길
아이만 12명ㆍ독거노인 보듬자리도 마련

▲마을 뒤에 병풍을 펼친 듯한 병풍산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뒤에 병풍을 펼친 듯한 병풍산이 자리하고 있다.

삼산초등학교 옆길로 쭉 가다 보면 조금 지나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하늘에 마치 병풍을 던져놓은 듯한 병풍산(315m)이 눈에 들어온다. 산 아래 위치한 마을은 그래서 평화로움과 넉넉함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삼문과 비각으로 만들어진 이유길 유허비.
▲삼문과 비각으로 만들어진 이유길 유허비.

병풍산 아래 자리 잡은 충리마을은 충의공 이유길 장군이 살았다고 해 충신터라 부르다가 충리가 됐다. 마을회관 옆에는 이유길 유허비와 비각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유길 장군은 17세에 임진왜란을 겪으며 이순신 장군의 군대에 들어가 명량대첩에서 공을 세웠다. 이후 명나라가 후금 토벌을 위해 조선에 출병을 요청하자 도원수 강홍립의 부장으로 참전했다가 만주의 심하 전투에서 숨졌다. 다른 장수들은 모두 적에게 항복했지만, 끝까지 싸운 것으로 전해진다. 철종 때 충의라는 시호를 받았고 고종 때 출생지인 삼산면 충리에 이유길 장군을 추모하는 유허비(높이 250cm, 폭 84cm)가 건립됐다. 이유길 유허비는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비각과 삼문(정문)이 설치돼 있다. 비각 옆에는 그의 사후에 내려진 각종 벼슬 이름을 새긴 비석도 세워져 있다. 이유길 유허비는 2000년에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됐다.

▲마을 입구에 있는 소나무.
▲마을 입구에 있는 소나무.

마을 앞 소나무는 마을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수령이 수백 년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마을회관 앞에 자리한 것이 장군의 위풍당당을 연상케 한다. 도로를 넓힐 수 있었지만, 마을 수호신인 소나무를 건들 수 없다며 주민들은 편리함보다 마을과 함께한 역사와 문화를 선택했다. 병풍산에는 ‘입 벌린 바우’로 불리는 병풍산 바위굴이 있어 눈길을 끈다. 정면에서 보면 바위굴의 모양이 입을 벌리고 있는 호랑이와 닮아서이다. 

김충기 충리마을 이장은 “바위굴이 기가 세서 마을에 안 좋은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예전에 없애려고 논의도 있었지만, 마을의 또 다른 문화유산이라고 여겨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며 “지금은 나무들에 가려 정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충신의 마을은 현재 살기 좋은 마을로 변신했다. 저출산 시대에 충리마을에는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아이만 12명이 살고 있다. 전체 주민이 89명인데 이 중 13%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어서 면 단위 한 학교의 전교생 수와 맞먹는 상황이다. 벼, 마늘, 버섯 농사는 물론 비닐하우스에서 고구마순도 재배하며 농사짓기 좋은 풍광에 읍과 가깝고 교통편도 좋아 젊은 층이 몰리고 있다. 삼대가 마을에서 같이 살기도 한다. 주민들은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해남군에 요청해 어린이보호구역에 준해 마을 앞에 과속단속카메라(시속 30km 이하)를 설치했다. 아들과 함께 2대가 함께 지역인재 육성을 위해 해남공업고등학교에 13년째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는 제일코비의 김종일 대표의 고향도 삼산면 충리마을이다.

아이 울음소리가 큰 마을이기도 하지만 노인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마을회관은 항상 어르신들로 북적이고 어르신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부녀회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해 간식과 먹거리를 챙기고 마을 잔치를 열기도 한다.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보건소 직원이 마을회관을 방문해 생활체조와 요가 등을 가르치고 있다. 회관 안에는 독거노인 7명이 함께 모여 사는 보듬자리도 마련돼 있다. 기존의 회관을 조금 넓힌 것으로 10평이 안 되지만 개인물품을 보관하는 개인 사물함에 이부자리, 전자제품도 갖춰져 있다. 홀로 된 노인들이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는 일종의 그룹홈이다. 주민들은 홀로 되신 어르신이 발생하면 그룹홈으로 모시고 있다.

▲마을회관에 마련된 보듬자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어르신들.
▲마을회관에 마련된 보듬자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어르신들.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서 생활체조를 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서 생활체조를 하고 있다.

임정애(84) 어르신은 “혼자 돼서 집에 있으면 외롭고 고독사 위험도 있지만, 여기서는 모여서 놀고 저녁에 같이 자고 대화도 하고 어려울 때 돕고 또 다른 가족이 생긴 셈이지”라고 말했다. 

김충기 이장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고,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