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에도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 해남등대원에만 최근 6년 동안 19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취업 등을 통해 사회에 잘 정착하고 있지만 상당수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거나 취업을 하지 못해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다. 때문에 해남의 또 다른 청년인 이들을 위해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해남신문은 신년기획을 통해 자립준비청년의 실태와 대책을 알아본다.

▲등대원 생활지도원(왼쪽 여섯번째)과 김구성 씨(왼쪽 여덟 번째)가 등대원에서 생활하는 아동들과 함께 완도수목원 나들이에 나섰다. 
▲등대원 생활지도원(왼쪽 여섯번째)과 김구성 씨(왼쪽 여덟 번째)가 등대원에서 생활하는 아동들과 함께 완도수목원 나들이에 나섰다. 

19세에 1000만원 쥐고 떠나야 해

자립준비청년은 아동보호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에서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가 되어 보호가 종료된 이들을 뜻한다. 보호가 종료됐다는 의미는 시설을 떠나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2021년 아동복지법 개정을 통해 본인 의사에 따라 보호 종료를 만 18세에서 만 24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매년 2500명의 자립준비청년이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문제는 이들을 위한 지원제도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데 있다. 이들은 퇴소할 때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자립정착금 1인당 1000만원과 퇴소 후 5년까지 자립수당 월 40만원(올해부터 월 50만원 인상), LH주거지원 등의 지원을 받지만 막 성인이 되거나 20대 초반의 청년층이 의식주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 시설에서 보호받으며 시설 생활을 한 이들이 사회에 나갈 충분한 준비도 돼 있지 않다 보니 심리적인 불안감이 커 퇴소 후 자립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립준비청년 26% 연락두절

아동보호시설인 해남등대원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6년 동안 이 시설에서 퇴소한 자립준비청년은 19명에 달하고 있다. 2018년 7명, 2019년 4명, 2020년 3명, 2021년 1명, 2022년 3명, 2023년 1명이다. 이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19명 중 47%인 9명은 취업, 결혼, 가정복귀, 장애인 시설 입소 등으로 사회에 정착했거나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전체의 26%인 5명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나머지 5명은 현재 일정한 직업 없이 취업을 준비하고 있거나 우울증 치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남등대원 김영기 사무국장은 "품어주는 울타리 없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에 나가다 보니 취직도 힘들고 직장에 들어가도 적응하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며 "적응을 잘 못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면 그때부터 연락이 잘 되지 않는데 결국 연령이 도달하면 퇴소를 해야 하는 현 시스템이 오히려 이들과 단절을 불러오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특히 자립준비청년 일부는 장애나 지병을 앓고 있는데 발음이 부정확하다며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업무 중 간질이 발생해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 직장 안에서 사고를 당해 퇴직 후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일정 기간이 되면 무조건 퇴소시키기보다는 퇴소 전에 이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상담과 교육을 강화하는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부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김구성(오른쪽) 씨와 해남등대원 박자원 원장.
▲부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김구성(오른쪽) 씨와 해남등대원 박자원 원장.

새 희망을 안고 살다

올해 23살인 김구성 씨는 경기도 평택 2함대에서 하사로 군 생활을 하고 있는 부사관이다. 가정폭력 때문에 중학생 때 자발적으로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한 후 등대원에서 생활하게 됐다. 해남공고에 진학 후 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리더십도 뛰어나고 학교생활도 잘했지만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그에게도 퇴소 후 진로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리게 됐다.

김구성 씨는 "안정적인 직업에 빨리 일을 시작하고 여기에 의미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 군인이 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처럼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대학교 진학이나 사회생활에 잘 정착하고 있는 자립준비청년들도 많다.

A 씨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퇴소 후 곧바로 미용사 일을 했으며 지금은 결혼 후 자신의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B 씨는 장애인학교 전공과 과정을 나와 취직 후 현재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C 씨는 전남체고를 나와 제주대 관광과에 들어간 뒤 현재 골프장에서 일하고 있다. D 씨와 E 씨는 남매지간으로 고교 위탁과정 직업훈련을 거쳐 취직 후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김구성 씨는 "보호시설에서는 10명 정도가 같이 생활하는데 보호종료 후 가족도 없고 친인척도 없다면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어 가장 큰 어려움이 외로움이다"며 "특히 시설에서 생활할 때는 의료비를 전혀 내지 않았지만 지금은 병원에 가게 될 경우 부담해야하는 비용이 많아 앞으로 의료비 지원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배움마켓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서울시 제공)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배움마켓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서울시 제공)

관심과 지원 강화 필요

해남에서는 그동안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실태가 잘 알려지지 않아 왔다. 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래왔다. 제도권 안에서 이들에 대한 자립정착금과 자립수당이 주어지고 있고 군 차원에서 보호 종료 아동을 위해 이불과 조리 도구 등 1인당 100만원 상당의 첫살림 자립키트가 지원되는 정도가 전부였다. 할머니학교를 세운다거나 문해교육 등에 막대한 예산이 지원되고 있지만 당장 해남의 또 다른 미래이기도 한 이들 청년에 대한 지원은 아직 미비한 상황이다.

경제적 지원을 늘리는 것과 함께 자립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이를 뒷받침해줄 만한 정책개발도 필요하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자립생활을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게 배워야 한다. 살 집도 구해야 하고 공과금도 내야하며 여러 형태의 계약서도 직접 써야 한다. 가르쳐줄 어른이 없는 이들에게는 모든 게 도전이다.

서울시는 (예비)자립준비청년들이 보호 종료 이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실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자립역량교육 '배움마켓'을 지난해 7월 전국 최초로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신용관리, 대출, 금융사기 예방, 집 계약하기, 세입자의 법적 책임, 근로계약서 작성 요령, 4대 보험 알기는 물론 공동체 이해와 자립 동기부여 등을 주제로 인문학 강의도 이뤄지고 있다. 선배 자립준비청년 강사 양성도 준비되고 있고 이들의 소통을 위해 자조모임과 스터디 모임도 운영되고 있다.

인천시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사회에 나가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시민 멘토링 사업인 '인(仁)품 가족단'을 올해부터 운영한다. 변호사, 공인중개사 등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시민단체로 구성돼 법률, 노무, 건강, 부동산 등 분야별로 도움을 주고 자립준비청년에게 필요한 정보와 일상생활 서비스도 제공하게 된다.

해남군도 이제라도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이 요구되고 있다.

또 광역시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대책이라고 뒤로 물러서기만 하지 말고 다른 자치단체들의 대책을 거울삼아 이들의 자립을 돕는 해남형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예비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교육과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며 이들이 지역에서 함께 생활하고 일할 수 있는 연계형 취업대책 마련도 요구되고 있다.

지역사회의 관심도 필요하다. 항상 청년 문제를 얘기하고 있지만 언제부터인지 외지에서 생활하다 해남으로 귀농, 귀촌한 청년들에 대한 지원에만 목소리를 높여왔다.

해남등대원 박자원 원장은 "이들도 해남 청년이다"며 "이들이 퇴소날짜가 됐다며 떠밀리듯 사회로 나가 한 번의 실패로 좌절하는 일이 없도록 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환경 조성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