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영 (해남교육지원청 교육장)

대한민국의 고3 학생과 학부모는 남다른 시간을 보냅니다.

제가 2006년 9월 1일 진도군내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했을 때 첫 아이가 고 2, 둘째 아이는 중 1이었습니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엄마 덕에 "엄마 말은 항상 어려워, 좀 쉽게 해 줘"라고 말했던 초등학생이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준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큰아이가 학교폭력으로 인해 피해자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너무도 우리 아이가 흥분하지 않고 오히려 저를 위로했던 일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교직 생활 내내 가정과 직장을 양립하는 교육행정직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수험생 한 명, 한 명의 주변에도 내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한 학부모님과 우리 아이들을 위한 수많은 조력자의 갈등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함께 해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인구절벽에 서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모두가 소중한 사람임이 농산어촌의 절실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함께 성실하게 꽃이 되어 이 땅을 지키고 바람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사람이 국가 동력입니다. 함께 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에너지를 모아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4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제79해남시험지구에서 응시한 학생들과 학부모님 또한 교직원들께도 격려와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지금까지 잘 해오셨습니다. 수험생들은 이제 긴장을 풀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를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시간 잘 견뎌내 주셔서 고맙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희망하는 진로를 개척하셨으면 합니다.

결과는 당연히 잘 나옵니다. 시험 점수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게 아니며, 인생의 긴 여행의 수많은 과정 중 하나입니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며 그 진정성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중요합니다. 해남 완도 장흥 강진 모든 수험생 여러분, 잘 해내셨습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저 안에 땡볕 두어 달/저 안에 초승달 몇 낱이 들어서서/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대추야/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대추 한 알에 '태풍, 천둥, 벼락, 무서리, 땡볕, 초승달'이 깃들어 있듯이 수험생 여러분이 함께 한 시간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수없이 넘어져야 일어나는 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현재 모습 그대로도 소중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여러 고난을 이겨내고 붉고 둥근 대추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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