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구(송지 마봉리 달마산 딸기 농장주)

'모두가 웃는 장례식'이란 표현은 조금 생각하면 형용 모순인 거 같다. 호기심이 가는 책 제목이긴 하지만 아무리 호상(好喪)이라 할지라도 망자 (亡者)에 대해 슬픔. 회한. 서운함. 아쉬움 등이 장례식 분위기를 지배할 텐데 모두가 웃다니. 이건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혹시 죽어서도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얻지 못하는 못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섣부른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몇 주 전에 해남군립도서관에서 필자가 활동 중인 송지면 '어깨동무 독서 동아리'에 '모두가 웃는 장례식'이란 책을 지원해줘 읽었다. 소년한국 우수 어린이 도서이지만 '6학년 고학년'(60대 후반)인 저도 적잖은 감명을 받았다. (사람은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의식 수준이 어린이가 된다든디 나도 시초인가 ㅋㅋ)

장례식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수정할 수 있는 좋은 책으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죽은 뒤에 몰려와서 울고불고한들 무슨 소용이야? 살아 있을 때 한 번 더 보는 게 낫지." 우리가 가끔 어디선가 들었던 말인 거 같다.

장례식 주인공은 이미 망자가 돼 버렸는데 누가 온들. 무슨 짓(?)을 한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상주들의 조의금 품앗이 점검 외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가?

이제는 정말 살아있는 사람 위주에서 죽은 사람이 중심이 되게 우리의 장례 문화를 바꿔나가야 할 때라고 본다.

책 내용을 잠깐 보면 시장에서 한복점을 하며 4남매를 키운 할머니. 암에 걸려 시름시름 앓더니 돌아오는 생일에 '생전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한다. 즉 잔치 같은 장례식을 치러 생전에 보다 많은 지인들을 보고 여한을 줄여나가면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하시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결심인가?

오랜 인연을 맺었던 지인분들께 생전에 감사의 말씀을 전할 수 있고, 죽은 장례식에나 볼 수 있는 아니 장례식에도 영영 못 볼 타국에 있는 애뜻한 가족도 소환할 수 있으니 정말 '멋진 모두가 웃는 장례식'이 되는 것이다.

살아있는 장례식 날 장남의 인사 말씀과 어머님의 작별 인사로 저의 글을 마감할까 한다.

"어머님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신 뜻은 지난 세월 함께한 분들과 좋았던 시간을 추억하며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자는 것입니다. 부디 그 뜻을 생각하시면서 준비한 음식 맛있게 드시고 어머님과 좋은 말씀 나누시길 바랍니다."

또 어머님의 감사 말씀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 진짜 장례식은 여기 있는 우리 자식들이 조용히 치를 거예요. 나중에 소식 듣거든 좋은 곳으로 잘 갔으려니 그리 생각해 줘요. 이번 생에 내 친구로, 이웃으로 만난 여러분 참 행복했어요. 내 자식으로 태어나 준 우리 아들, 딸, 손자, 손녀한테 너무 고마워요. 다음 생이 있다면 우리 그때 또 만나서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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