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경(전 광주일보 편집부국장)

14년 전인 2009년,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18일 오후. 당시 신문사 정치부장 자격으로 한 토론회 참석을 위해 외출 중이던 필자는 급하게 회사로 복귀해야 했다. 15대 대통령 김대중(DJ)이 노환 끝에 숨을 거두었다는 급보가 날아든 것이다.

75세의 늦은 나이에 대통령에 당선돼 격무에 시달렸고, 정치 인생 중 수년간 투옥과 갖은 고초로 평소 건강이 좋지 않던 그였다. 퇴임 후 노환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줄곧 들려와 신문사에서는 오래전부터 그의 서거에 대한 예비 제작계획을 세워 둔 터라 그리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먼저 신문에 게재할 자료 사진부터 골랐다. 그가 유년에 다녔다는 신안 하의도의 서당 '덕봉강당'의 빛바랜 옛 모습부터 목포상고(현 목상고) 시절 여학생들의 눈길을 한데 끌었을 법한 잘생긴 교복 입은 사진과 아직도 모교에 코팅돼 보관 중인 그의 성적표 사진도 추켜들었다. 사실상 그의 정치 데뷔 무대라고 할 수 있는 1961년 5월 14일 강원도 인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당선 사진(DJ는 5·16 쿠데타로 국회가 해산돼 의원선서도 못했다)과 1971년 제7대 대선 신민당 후보시절 사자후를 토하던 장면도 당연히 포함됐다.

대선 실패 후 1973년 도쿄에서 벌어진 '김대중 납치 사건'에서 구사일생으로 생환 후 동교동 자택에서 입술 주변 큰 상처와 함께 기자회견 하던 사진 역시 빠뜨릴 수 없었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뒤집어씌운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서 빡빡머리로 복역하던 모습의 사진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미국 망명에서 귀국 후 민주화운동과 함께 광주 망월묘역을 방문해 5·18 유가족을 부둥켜안고 펑펑 눈물을 쏟아 뭉클했던 장면, 제13·14대 대선 유세, 헌정사상 직선제 및 민간정부 출범 이후 첫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15대 대통령 당선의 희열과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 노벨평화상 수상까지…. 사진으로 본 DJ의 일생은 바로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였다.

마침 18일이 그의 14주기여서 한국 정치사에서 기념비적인 존재로 평가받는 '정치인 김대중'을 반추해보고자 한다. 그도 한 인간인지라 공적이든 사적이든, 크든 작든 허물이 없을 수 없겠지만 '정치인 김대중'에 초점을 맞춰 그의 발걸음을 거슬러 보았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겠지만 그는 이상과 현실을 추구한 정치가였다. 즉,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라는 말로 축약된다. 정치인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함과 동시에 당대의 구조적 모순을 꿰뚫고, 현장에서 문제 해결 방안을 찾아 국민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른바 '김대중 정신'으로 불리는 실용주의 정치철학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이미 7대 대선에서 '대중경제론'을 주창하며 대다수 서민이 모든 정책의 지향점임을 천명했다. 또 공약으로 '미·일·중·소 4개국에 의한 전쟁억제 보장'을 요구했다. 이는 30년이 지나 한국·북한·미국·중국·러시아·일본이 참여한 '6자회담'으로 가시화됐다. 탁월한 선견지명이었다. 그는 화해협력과 격차 해소가 당면한 '시대정신'임을 확신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 당선 후 남북정상회담, 영호남화합, 정보화사회 구축, 의료보험 통합 등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평화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등을 지내며 그는 늘 국회의원들에게 "배지를 떼지 말고,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배지를 항상 달고 다녀야 품위를 잃지 않고, 공부해야만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설파했다. 한 원로정치인의 회고. "한 번은 DJ가 국회에서 심야에 귀가하는 데 유독 한 의원의 방에 불이 훤하게 켜져 있어 누군가 궁금해 올라가 보았다고 한다. 방문을 여는 순간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중진 의원끼리 바둑 삼매경에 빠져 있었고, 그들은 DJ가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내 격분한 DJ가 짚고 있던 지팡이로 바둑판을 내려치는 바람에 의원실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이후 DJ 앞에서 바둑은 금기어가 되었다고 한다. 한 판에 2~3시간 잡아먹으니 언제 공부하느냐는 이유에서다.

DJ의 정치 신념은 중앙 정치 무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되레 해남 같은 농어촌의 민생 터전이야말로 국회의원, 군수, 도의원, 시·군의원 등이 현장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김대중의 민생정치 1번지'이다.

그렇다면 지역에서 '김대중 정신'을 실천하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공부하고 현장을 누비기는커녕 '감투' 지키기와 '이권'에만 혈안이 된 모리배들이 더 많은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김대중의 육신은 갔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DJ정신 계승을 위해 불철주야 뛴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살아 있는 김대중'을 다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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