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학부모)

우리 가족은 지난해 3월 전남농산어촌유학 프로그램으로 삼산초등학교에 전학을 왔다.

첫째가 5학년, 둘째가 3학년 그리고 셋째가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아이 셋을 데리고 서울에서 해남으로 오는 결정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맞벌이이지만, 아이들과 편의성을 위해 선택하게 된 프리랜서라는 직업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아이와 관계성에 제동이 걸렸다.

그래서 '농촌 유학'이 한 줄기 희망처럼 느껴질 정도로 힘들지 않게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3월, 아이들만 데리고 시작한 농촌유학생활은 걱정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즐거움과 호화로움 그 자체였다. 아이들은 학교가 바로 코앞이지만 처음 타보는 노란색 스쿨버스에 줄을 서서 타보는 재미에 빠졌고, 난 어린이집 보내는 엄마마냥 출발하는 아이들을 보며 행복하게 손 흔들어주는 상냥한 엄마가 되었다.

민박집의 큰 창에서 보이던 '무선동 한옥마을'의 길고 긴, 뻥 뚫린 도로는 나에겐 실크로드처럼 보였고 벚꽃나무의 꽃잎들은 멋진 공연을 해주는 공연단과도 같았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후 7시까지 놀았다. 뛰다 들어오면 밥은 세 그릇씩 깨끗이 먹었고 바지 무릎은 꼭 한 달에 두 개씩은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서울과 달리 마음 놓고 뛰놀다 보니 '제대로 놀면' 이럴 수도 있구나라는 충격 비슷한 감정이었다.

해남의 여름은 더웠지만 덥지 않았다. 여름방학 동안 우린 매일같이 해남군립도서관으로 가 공부를 하다 책을 보고, 새 영화가 개봉되면 해남시네마로 달려갔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즐겼고 물놀이를 하고 싶은 날엔 바다로, 계곡으로 큰 고민 없이 목적지를 정했다.

어느새 여름을 즐기다 보니 가을이 되었다. 아이들은 아침, 저녁으로 일상의 길을 오가며 자연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웠다. 논에 뿌려진 우렁이와 우렁이알을 보며 재잘거렸던 등굣길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바람의 방향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벼들의 물결로 주제가 바뀌었다.

눈에 담고 또 담았던 황금색 들녘은 길도, 산도 하늘도 하얀 '삼산겨울왕국'으로 변했다. 고즈넉한 겨울의 해남에선 이 넓디넓은 겨울왕국의 깨끗하고 질 좋은 폭신폭신 하얀 눈이 모두 우리들 것이었다.

그 사이 우리는 한 학기를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둘째 아이가 삼산초에서 매년 열리는 '스내그 골프대회' 준우승을 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지금도 아리송하다. 그게 이유였을까, 해남에 남고 싶은 핑계였을까?

다시 봄이 오고, 해남에서 보내는 두 번째 여름이자 우리의 마지막 계절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해남에서 하룻밤 잔 순간부터 지금까지 해남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중심엔 우리들의 작은학교 삼산초등학교가 있다. 아이들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건 학교를 빠지는 일이고 제일 좋아하는 날은 등교하는 날이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와 체험, 수업을 사랑하며 학교 친구들, 학교 선생님들을 사랑한다. 그 이유를 어떻게 하나하나 글로 쓸수 있을까.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그런 것을 말이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며 아직도 농촌유학을 고민하는 도시의 가족이 있다면 꼭 한번 해보시라며 두 손 잡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이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내가 아이들을 보며 느낄 수 있는 건 자연이 주는 선물들을 마음으로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해남의 아름다운 추억을 통해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 가족에게 아름다운 해남을 느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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