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밸런스 게임의 주제로 언제 죽을지 아는 것과 어떻게 죽을지 아는 것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밸런스 게임은 두 가지 중 무조건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질문형 게임으로 짜장이냐 짬뽕이냐와 같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져 웃음을 주는 게임이다. 앞서 나온 질문에 초대 손님은 언제 죽을지 아는 것을 선택했다. 그는 언제 죽을지 안다면 그때까지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신문사의 기획 연재물로 금기된 죽음인 안락사에 관한 기사가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는 엄연히 불법이고, 스위스와 같은 안락사가 인정된 나라에 가서 진행하더라도 동행 가족은 자살방조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기사는 시대의 흐름을 짚고, 안락사를 인정하는 국가들의 정책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공론화의 필요성을 얘기했다. 무엇보다 스위스행을 택한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며 그들이 쉽게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아닌 살려고 너무나 애쓰고 노력했던 사람들임을 확인했다. 살기 위해 선택한 치료가 살아갈 만한 일상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부고 문자가 왔다. 지인의 어머니가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밭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사고가 났다고 한다. 현장에 같이 있었던 지인의 고통은 말도 못 할 정도였고, 우울감에 힘들어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에 그동안의 아쉬움이 더 커 그 흔한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한 가족의 마음이 느껴졌다.

국회에 조력 존엄사 법안이 발의된 지 1년을 맞았다. 이제 우리 사회도 죽음의 질을 이야기할 때다. 제3자로서 조력사망을 옹호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을 떠나 스위스로 향하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고, 개개인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드러내 얘기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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