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례(푸른영상 독립영화 감독)

포털 사이트에 해남 소식이 뜨면 관심있게 보는 편인데 지난 5월에 살인사건에 대한 짤막한 기사를 보았다. 며칠 후 도착한 해남신문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력수급 문제가 원인이었다는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었다. 2010년 강화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서빙하는 사람이 우즈베키스탄 사람이라 엄청 신기했었는데 지금은 주변에 정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있고 다큐멘터리 작업 때문에 자주 가는 김포 대곶은 아예 딴 나라 같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과 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안다. 지난 일주일은 원주민으로서 내가 참 많이 가졌다는 것을 깨닫는 그런 시간이었다.

나는 요즘 미얀마 난민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우리 주인공들은 아침 7시에 집을 나서서 밤 10시가 다 되어야 집에 돌아온다. 한 달에 딱 한 번 쉬는 지난주 수요일에 나는 우리 주인공들과 함께 경찰서에 갔다. 주인공들이 오토바이 수리를 맡겼는데 수리점에서 번호판을 분실했고 그래서 새로 오토바이를 장만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번호판을 잃어버린 게 3월인데 수리점 사장은 일주일 안에 해결하겠다는 말만 반복했고 그렇게 4개월째 보험료만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화를 했더니 해결해주겠다고 하던 수리점 사장은 우리보고 경찰서에 가서 분실신고를 하라고 했다. 나는 안내자 겸 운전자로 주인공들과 동행했다. 공교롭게도 그날 파출소 문에는 '112 출동 훈련 중'이라는 안내종이가 붙어 있었고 좁은 파출소 안에 파란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열 명 가까이 있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녀서인지 나는 경찰을 보면 겁부터 난다. 그런데 제복에 대한 주인공들의 공포는 훨씬 더 심해보였다. 고국 미얀마에서도 군인과 경찰들로부터 많은 고통을 당했고 한국에 오기 전에 머물렀던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 경찰들은 수시로 불러 세워서 신분증 검사를 했다고 한다. 카렌족 난민인 소여수씨와 소미누, 그리고 나, 경찰을 무서워하는 우리 세 사람은 우물쭈물하며 용건을 말했다. 경찰은 분실인지 도난인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경찰의 설명이 어렵기도 했고 번호판을 잃어버린 곳이 수리점이니 수리점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경찰과 통화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던 중 해결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4개월을 끌던 일이 일주일 만에 해결되었다.

"우리가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 촬영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공동연출과 함께 가졌던 의문이다. 난민들은 경찰을 무서워하니 망설였을 것이고 용기를 내서 경찰서에 가더라도 제대로 소통이 안 되었을 것이다. 같이 밥을 먹고 헤어지는 순간 소여수 씨는 고맙다며 90도로 인사를 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낮에 봤던 얼굴이 생각나서 그 격한 고마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뭐하는 사람이냐는 경찰의 질문에 "저는 다큐멘터리 감독이고 이 분들은 저희 영화의 주인공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순간 파출소 안의 공기가 살짝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일하는 푸른영상 앞에는 '소외된 사람들을 비추는 카메라'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오랜 시간 우리는 장기수, 도시빈민, 장애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난민, 이주노동자가 추가될 예정이다. 허름한 옷차림에 대단치 않은 카메라를 든 우리가 단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도움이 되어서 기뻤다. 한 편으로는 세상 물정에 어둡고 셈에 무능한 우리를 '믿는 구석'으로 여기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다음 날은 근무기간 1년을 앞두고 갑자기 해고당한 주인공을 만나러 서산에 내려갔다.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을 '믿는 구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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