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순(교사)

10여 년 전 덴마크에 간 적이 있었다. 인상적인 장면이 여럿 있었는데 어느 식당에 들어갔을 때였다. 백발의 웨이터가 경쾌한 걸음으로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주문 외에도 그는 우리 일행에게 관심을 보였고,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려주고 싶어 했다. 나이가 지긋하게 보이는데 쉬지 못하고 '식당 보이'를 하면서 뭐가 저리도 즐거운 것인지 궁금했다.

"우리는 행복하다. 일할 수 있어 행복하고, 저녁에 가게를 빨리 닫으니 일찍 일을 마치고 여가를 즐길 수 있어 행복하다. 물론 여가는 술집이나, 카페, 노래방으로 전전하는 게 아니라,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잔디를 깎고,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하는 것이다. 일해서 월급을 받으면 국가에 내는 세금은 많지만, 연금으로 노후를 보장해주는 국가에 기여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 게다가 일을 할수록 수령하는 연금 액수가 늘어나니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 많이 공부한 고급 관료, 전문가나 일찍이 직업전선에 나와 일하는 식당 웨이터나 월급 차이가 큰 편이 아니어서 굳이 공부 재주가 없는 사람이 머리 아프게 공부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사람의 노동 가치가 소중해서 사람의 손이 들어가는 순간 물건값이 올라간다. 그래서 몸으로 일하는 사람이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일을 할 예정이며 자식에게도 이 일을 물려주고 싶다."

머리를 쇠망치로 맞은 기분이었다. 싱글벙글 즐거운 할아버지의 식사 서비스를 받으며 우리 일행은 덩달아 행복 바이러스에 취하면서도 일상이 전쟁터인 우리들의 삶과 젊은이들의 절망, 절벽에 떠밀리듯 성적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학생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를 방문했을 때 당시 교무 부장님 격인 선생님의 설명이 아직도 생생하다. 덴마크는 교사 99%가 노동조합에 가입한다고 했다. 민주국가에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한데 각자 흩어진 개인의 의견 수렴이 어렵기 때문에 노동조합이란 조직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아예 임용 면접 때 노조 가입을 필수로 묻는다고 했다.

꿈같은 소리이다. 교사가 무슨 노동자냐? 우리의 현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직원노조가 불법 법외노조가 되었다가 다시 합법노조가 되기를 반복하는데 교사뿐 아니라, 관리자까지 모두 노조에 가입한다니 꿈같은 이야기였다.

우리 노조 가입률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10%가 안 된다. 과연 어느 나라의 노동자 권익이 보장될까? 우리나라 노동자 중 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를 모두 보장받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내 자식부터 직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건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인건비가 싸니 모든 상품뿐 아니라, 음식도 배달해 먹는 편리한 나라에서 산다. 24시간 영업하는 업소가 수두룩한데 모두 저임금 노동자 고용이 받쳐주고 있다.

인간의 노동이 대접받지 못하니 모두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일한 만큼 박수 받기보다는 가난해지고 무시 받는 느낌이다. 우리 대다수가 노동자인데도 노동자를 천시하다 못해 혐오까지 한다. 노동조합을 탄압하면 정부의 지지율이 상승한다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저임금 만원을 올리자는 데 나라가 금방 무너질 것처럼 아우성을 치던 언론과 기득권 세력들의 반대는 결국 수년이 흘러도 최저임금 1만원 벽을 넘지 못하게 했다.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를 찾게 도와주기보다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가서 편하게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일하지 않고 편하게 산다는 것은 결국 일하는 누군가의 등골을 빼먹는 것이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나라, 죽는 날까지 제 몸 건사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인 나라, 노동자가 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할 때 당당하게 행동권을 행사하고 이를 응원해 줄 수 있는 성숙한 국민이 있는 행복한 나라를 꿈꾸면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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