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경(전 광주일보 편집부국장)

황량한 갯벌이 황금의 땅으로 변모하는 '갯벌 벽해'는 이뤄질 것인가? 자르르한 윤기와 함께 수 천 년 동안 바다 생명의 모태였지만 사람들의 손에 물길이 막혀 죽음의 땅으로 변했던 해남과 영암의 갯벌. 비록 그 소중한 가치는 잃었지만 이제 새롭게 변신 중이다.

뒤떨어진 서남해안 발전의 동력이 될 '솔라시도 기업도시'가 20년 가까운 산통 끝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사업은 이른바 'J프로젝트'(서남해안 관광레저기업도시)라는 이름으로 시동이 걸렸다. 한국전력 등 공기업의 대규모 지방이전 정책을 감행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국에서 산업기반이 가장 취약한 서남해안의 균형발전을 위해 허허벌판인 간척지에 대규모 관광레저기업도시 건설 구상을 밝혔다. 해남·영암군 일대 간척지 87.92㎢(2664만 평)에 15만 명이 상주하는 동북아 최대 해양관광 휴양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업은 처음부터 방향이 틀어져 난맥상을 거듭했다.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카지노를 포함한 대규모 관광레저도시를 건설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사행성 논란과 마카오 등 세계적인 위락시설과의 경쟁력 저하, 대규모 자본유치 난항 등으로 지지부진했다. 지금까지 가시화된 것은 막대한 재정 낭비 논란을 불러온 F1경주장과 몇몇 골프 코스 정도이다.

이처럼 20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새 틀을 잡은 게 '솔라시도 기업도시'다. 오는 2025년까지 해남군 산이면 구성리, 상공리, 덕송리, 금호리 일원 632만 평에 2조2000여 억 원을 투입해 1만4000여 세대 3만6000명의 인구가 상주하는 관광·기업도시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에 따라 우선 서남해안 광역 관광거점단지가 들어선다. 빼어난 생태환경을 토대로 9개의 정원과 수상 복합예술 공간도 만들어진다.

더불어 기업도시는 국제 흐름을 이끌어갈 미래 첨단도시로 가꿔진다. 스마트시티가 조성돼 거주민은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을 즐기게 되고, 신재생에너지 생산기반 구축과 연구 교육기능까지 갖춰 도시생산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은 기업들의 투자에 전남도, 전남개발공사도 참여한다. 행정 지원에 적극 나서는 해남군은 기업도시를 인구 유입과 재정수입 확충을 통해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튼튼한 토대로 삼는다는 복안이다.

그렇다면 솔라시도 기업도시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물론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본을 투자하는 기업이 지분에 따라 전권을 행사한다. 당연히 수익도 대부분 기업의 몫이다.

이즈음에서 해남 지역민들은 기업도시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비록 안방을 내준 건 아니더라도 한때 생활의 터전이었던 갯벌에 들어와 풍요를 누릴 기업과 외지인의 '들러리'가 되면 안 된다는 염려에서다.

소외된 지역에 외부의 자본과 주민이 유입돼 땅의 가치를 높이고 과실을 수확하는 동안 원주민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희생양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앞서가는 기업보다 자산이나 관련 정보가 크게 떨어지고 의사 결정권이 없어 참여의 폭이 극히 좁을 수밖에 없는 지역의 실정을 고려했을 때 꼭 기우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역민들은 기업도시와 미래산업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전문가를 찾아 공부하고, 기업도시 관련 협력기구를 만들어 건설적인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기업도시가 성공한 외국의 사례도 두루 살피고, 다가오는 미래에 걸맞는 독창적인 지역상생 모델이 무엇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이런 적극적인 자세를 갖춰야만 기업도시의 동반자 자격이 있다.

더불어 기업에 협조한다는 빌미로 무리하게 손을 벌리거나, '텃세'를 부려서도 안 될 일이다. 거꾸로 '협력기금'이라는 미명 아래 기업이 쥐여주는 몇 푼의 돈에 휘둘리면 내내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기업도시와 발걸음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앞날을 내다보는 지혜와 실천 방안을 갖추는 일. 지역민이 기업도시의 당당한 '안주인'이 될 수 있는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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