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곡종합처리장(RPC)은 산지 쌀 유통과 쌀값 형성에 절대적인 기능을 한다. 전체 RPC 가운데 65% 정도가 농협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비율만큼 농협이 산지 쌀 유통을 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농협은 산지 쌀값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한다. 쌀을 판매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일부 농협 RPC는 추수기에 농민들로부터 벼를 사들인 뒤 쌓아놓았다가 이듬해 수확기를 앞두고 출혈을 감수하고 부랴부랴 쌀을 팔아치운다. 이 때문에 쌀값 폭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정부는 농협 RPC의 어려운 운영 상황과 쌀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1시군 1 RPC'를 추진하고 있다. 농협도 RPC 통합 필요성을 절감하고 정부의 정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남의 대부분 시군에서는 이미 통합작업이 마무리됐으며, 타 시도에서도 완료됐거나 추진 중에 있다.

나주의 경우 이미 지난 2021년 남평·다시·마한·동강농협 등 4개의 RPC 통합에 나서 지난 4월 전국 최대 규모의 '통합 RPC'가 들어섰다. 벼 계약재배를 늘리고 고품질 쌀 생산, 통합 마케팅을 통한 시장경쟁력 강화와 판로개척이 기대된다.

이런데도 전국 최대 농군(農郡)이라는 해남에서는 농협 RPC 통합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해남에는 옥천농협, 화산농협, 황산농협 등 3개의 농협 RPC가 운영되고 있다. 해남에서 유독 통합이 이뤄지지 못한 데는 이를 주도하는 해남군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이보다는 농협들의 소극성을 들 수 있다. 조합원의 표를 먹고 사는 조합장이 자칫 RPC를 팔아먹었다는 비난을 우려하거나 통합 이후 지분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이런 이유라면 전국 모든 조합장이 비슷한 사정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통합에 대한 의지가 약하다고 봐야 한다.

늦었지만 물밑에서 통합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 다행으로 여겨진다. 3개 농협 RPC 장장과 책임자, 군 관계자 등이 지난달 중순 만나 통합의 원칙에 공감하고 이달 중 업무협약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농협 RPC 통합은 장기적으로 해당 지역 농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다른 지역에서는 일찌감치 통합에 나서 경쟁력 강화를 하는 데 해남만이 뒤처지면 안 된다. 통합 필요성을 절감하는 상황에서 조합원을 설득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농협과 해남군은 이제라도 RPC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기대한다. 각자도생으로 과당경쟁에 빠지지 말고 협동의 정신으로 쌀값 안정과 농민 보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