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례(푸른영상 독립영화 감독)

전화가 걸려왔다. 해남신문이 나오는 날이었다. 그때 나는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에 미얀마에 있었다. 전화료가 많이 나올까봐 얼른 거절을 누르고 해외에 있다고, 돌아가서 연락드리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2019년에 '소박한 자유인'이라는 곳에서 진행했던 미디어교육 수강생이었다. 교육은 주 1회 서울 홍대 입구에서 있었는데 해남에서 올라오는 분이 있어서 나는 너무 감동하여 다른 교육보다 더 열심히 했다. 그래서 전화번호부에 이름도 '해남 000'으로 저장되어 있다.

떠나오기 직전 내 SNS의 타임라인은 글값에 대한 토론이 활발했다. 어떤 매체에서 전문기고가에 청탁을 하며 원고료로 쌀을 주겠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토론의 시작이었다. 해당 글에는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매체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다. 필자에게 돈으로 받는 게 나은지 쌀로 받는 게 나은지 선택할 권리를 주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어쩌면 턱없이 낮은 쌀 가격도 사람들의 불만에 한몫했던 것같다.

나 또한 글값으로 쌀을 받고 있다. 2013년 겨울, '일하는 사람들의 작은책'으로부터 독립영화 소개 글을 써달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내가 큰 출세를 한 것 같았다. 원고료로 쌀을 주는 것도 너무 멋있었다.

글과 쌀의 관계를 생각하다 보면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너무 박하다 싶다가도/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라는 시를 쓴 함민복 시인 생각이 나기도 했다. 나는 현재 네 군데에 연재 글을 쓰고 있는데 원고지 10매 정도의 글을 쓰고 쌀, 5만원, 10만원, 20만원을 받는다.

다큐멘터리 만드는 일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주로 강의를 해서 돈을 버는데 강의 의뢰가 오면 내가 받는 강사료 기준을 정확히 얘기한다. 그러는 이유는 기준을 정확히 말하지 않으면 "20년 경력의 류미례도 이만큼 받았다"라는 식으로 말이 돌아서 후배들이 피해를 입을 것 같아서이다. 하지만 글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 활동을 글로 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고 있는 일의 일부가 글로 표현되는 것이고 책을 만드는 이, 독자, 그리고 필자인 나는 각각 활동의 양상은 다르지만 같은 무늬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는 독자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 가끔은 아주 구체적인 얼굴을 떠올리기도 한다. 독자들은 내가 그 곳에 글을 쓰기 전부터 이미 그 곳에 머물던 사람들이다. 나는 글을 쓰는 것으로 그 곳의 일원이 된다.

작은책에서는 변산공동체의 생산물들을 고료로 준다. 그 쌀, 그 된장, 그 나물, 그 장아찌, 그 간장에 값을 매길 수 없는 이유는 그것들을 생산한 사람들의 글이 같이 오기 때문이다. 작은책에 글을 씀으로써 그 생태계의 일원이 된다. 그것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내 글이 그 생산물들에 들인 노력에 턱없이 못 미칠까봐 괴롭다.

해남신문의 전화를 받았을 때에도 큰 출세를 한 것 같아서 기뻤다. 13살에 떠나온 고향에서 나를 불러주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서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서 자랑을 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스무 살부터 가장 역할을 해온 나의 오빠는 해남신문을 이미 알고 있었고 훌륭한 매체라고 알려주었다.

미얀마에서 끊었던 전화를 오늘 다시 걸었다. 예상대로 해남신문에 실린 글을 보고 전화를 한 거였다. 그 분도 해남신문이 좋은 매체라고 말씀하셨다. 오빠나 '해남 ○○○'님이 해남신문을 추켜세우는 이유를 아직 다 알지는 못한다. 매주 보내주는 신문을 보며 차차 이해해갈 것이다. 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지금 나는 가장 바라는 시간을 살고 있다. 영화를 만들고, 강의를 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연결되고 싶어서이다. 대화하고 싶어서이다. 해남신문에 글을 쓰고부터 연결되고 있고 대화하고 있다. 그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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